주체성의 탈환
무릇 사람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 존재이며, 더 나아가 각자가 타고난 운명 같은 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럼에도 변화의 불가피함이 예감되는 순간이 있다.
‘아,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이런 조그만 마음의 불씨가 지펴지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그 변화의 조짐은 고등학교 3학년 겨울, 수능을 마치던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입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나에게 학창 시절은 여전히 삶의 기틀을 이루고 있었고, 그날의 하루는 지금도 생생하다.
시험을 마친 뒤, 학교 정문 앞에 서서 ‘모든 게 끝났구나.’ 하는 허탈함과 함께 교문 앞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황빛으로 물드는 하늘, 한적한 도로 위, 부모님과 함께 하교하는 학생들.
나는 칼바람을 맞으며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바람의 가벼움만큼이나, 내가 인생의 전부라 여겼던 수능이라는 무대의 가벼움이 새삼스러웠다.
인생의 심판대가 이리도 가벼울 수가 있나.
그 허무감에 젖어 걸음을 떼면서도 ‘망했다.’라는 절망감만은 유독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는 채, 중학생 때부터 고3까지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집으로 향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선행학습, 밤 9시까지 이어지는 야자, 그 뒤로는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학원에 치여 살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러다 문득,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점수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절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도착해서도 한동안 문 앞에서 서성였다.
‘부모님 잠들었을 때 몰래 들어갈까.’
맨정신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수능이 다가오면 누구나 어렴풋하게 느낀다.
‘내가 여태 얼마나 잘못 살아왔는가.’
시험만 끝나면 생각해보자며 꾸깃꾸깃 눌러두었던 문제의식은 그날 밤, 이불 속 어둠에서 분노에 가까운 몸짓으로 터져 나왔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준비하지 못했을까. 왜 기본을 중요시하지 않았을까. 이럴 거면 그냥 내 페이스대로 해볼걸.’
스스로를 향한 분노였지만, 그 속엔 억울함도 분명 있었다.
단지 아쉬움이 아니라, 분명한 ‘억울함’이었다.
열심히 했다는 사실, 학창 시절의 뚜렷한 추억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미치게 했다.
성적표를 받는 날까지 몇 날 며칠을 최대한 방탕하게 보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 한도의 방탕함을 실천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해야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성적표를 받아든 순간, 잔인한 숫자들의 나열이 한꺼번에 현실감을 몰고 왔다.
종이 위의 숫자들은 묵묵하게, 그러나 확실히 나를 돌아보라고 강요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입시 생활은 ‘선택의 위임’의 연속이었다.
특목고에 합격하고도 일반고를 선택했던 일, 문과와 이과 중 이과를 택했던 일, 과탐 네 과목 중 두 과목을 고르는 일, 다닐 학원과 강의를 정하던 일까지.
모든 과정이 그랬다.
물론 ‘이렇게 해보고 싶다.’는 어렴풋한 바람은 있었다.
그러나 어른들의 ‘조언’이라는 포장 아래 제시된 하나의 의견, 최상위권 학생들 중심으로 형성하는 교실 분위기, 그런 대세의 흐름을 거스를 용기는 없었다.
“공부 못하면 나중에 저렇게 산다.”
“요즘 대학은 수시로 가야 해. 일반고 가서 양민학살 하자.”
“문과 가면 망한다.”
“전교권은 이 정도 선행은 기본이다.”
“이 학원 안 가면 뒤처진다.”
“야, 요즘 누가 OOO 강의 듣냐. 그딴 듣보 강사는 걸러.”
그런 말들 앞에서 내 생각이란 한없이 하찮았다.
함부로 의견을 발설했다가는 어디 코웃음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련의 대세가 곧 ‘정답’이었고, 정답을 거스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가장 아쉬운 건, 온갖 여론에 휩싸여 정작 내 의견과 약점을 진득하니 바라볼 생각조차 못했다는 점이다.
어찌저찌 모래성을 최대한 높게 쌓아봤으나, 그 결과는 결국 내가 감당해야 했다.
그땐 그게 그렇게 불공평해 보였다.
엄마를 원망했고, 학원 선생님과 어른들을 증오했다.
친구들과 환경까지 탓했다.
외부로 화살을 돌리며 분노하는 것이 그때의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정당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언제까지 비난의 화살을 남들에게 돌릴 수만은 없다고.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한다면, 판단의 역할을 남에게 넘기지 말자고.
이건 고결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해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부정적 기운 속에서 내가 더 잘게 부서져 가는 느낌이 들어서,
그저 일단 살고 보자는 생존본능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주체성을 가지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더 몰아세우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화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아직 세간에 내놓을 굵직한 성과는 없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후회 없이, 인생이라는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고 있다.
지난 시간들에 아쉬움이야 어찌 없으랴.
그러나 그 아쉬움조차도 ‘내 선택의 결과’라는 걸 알기에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수능에서 이미 실패를 맛본 내가, 이후 과정에서 매번 승승장구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인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니까.
그러다 보니 앞으로 마주할 실패가 온전히 ‘나의 실패’이길 바란다.
볼품없고 하찮아도, 그것이 ‘내 것’이라는 사실은 이상하리만큼 포근하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