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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사람 Nov 24. 2022

모순적인 나 자신과의 투쟁을 한차례 끝내고

‘아버지의 해방일지’ 책을 읽고

누군가 나를 오롯이 이해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받기만을 원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라는 도덕적인 교훈이 있다면 그 역의 상황에 대해서도 내가 받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딸로서 낙인이 찍혔다고 생각했던 주인공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인생을 거쳐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도움을 받고, 지난 사연들을 회상하면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삶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사회주의자로서의 근엄한 모습뿐만 아니라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남자로서, 이웃으로서 그동안 봐오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 두 짐을 짊어져야 했던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얼마나 이쁘고, 부러운 일인가

자신에 삶에 대해 온전히 이해해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말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죽음, 헤어짐이 깨달음의 계기가 된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유쾌하다. 미소 이상의 웃음이 나오는 책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픈 이야기인데 그럴수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덤덤한 주인공의 말투로 해학을 자아내는 문체는 웃음을 자아낸다.     


고 봐라, 가시내야. 믿고 살 만허제?

고 봐라, 내가 뭐랬냐? 믿으랬제?


세상과 사람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주인공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온 인연들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오해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다. 빨치산으로 살아오고, 동네 머슴을 자처하던, 항상 민중을 우선하던 아버지와 상반되게 사람들이 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에서 주인공이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낀 것은 근거 없는 일만은 아니다. 지금의 나 또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주인공인 딸의 모습과 유사한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과 가치관이 있더라도 삶의 여러 풍파를 겪다 보면 마음이 닳아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의 아버지는 어떻게 그러한 마음을 한결같이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살만한 것이 아닐까

신뢰를 지켜줬던, 자신이 오해했다고 느끼게 해줬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 인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바라보는 것도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도, 이렇게 소설을 좋아하는 것도 사람과 인생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이라는 곳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는 삶의 방향성을 찾고 싶기도 했다. 세상은 녹록하지 않기에 지혜가 필요했다.     


투쟁이 있었고, 무언가와 치열하게 싸워왔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싸워온 걸까. 다음 세대에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라는 마음만으로 열정을 태웠지만 결국은 나 자신의 모순과 치열하게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정의와 신념을 내세우면서도 사람에 상처받고, 열등감을 느끼고, 질투심을 느끼고, 고독해지면서, 나 자신의 이익을 원했고, 내가 앞서고 잘나가기를 바랐고, 내가 위에서 보듬어 줄 수 있기를 바랐던 그런 모순적인 마음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성장을 막았고, 눈에서 행복을 가려왔던 것 같다. (그것조차 얼마되지 않은 돈과 큰 성장도 아니었을 수 있다는 것이 허황된 것을 쫓은 것 같기도 하고, 좁은 시야 속에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질 싸움을 한 걸까?

우리 아버지는 지는 싸움은 시작하지 말라고 하셨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책의 빨치산 아버지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고 한다.


한 때, 보수와 진보의 차이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세상을 인식하는 시야가 보수주의자는 짧은 편이고, 진보주의자는 넓은 편이라는 것이었다. 보수주의자는 자신과 가족 등을 우선시하고, 진보주의자는 인류와 환경 같은 대상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과 태도에 대해서도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부분은 뇌 구조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위험과 공포를 관장하는 편도체가 진보주의자에 비해 발달되어 있고, 진보주의자는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담당하고, 새로움을 즐거워하는 전측대상피질이 보수주의자에 비해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어쨌든 모순적인 나 자신과의 투쟁의 시간은 한차례 끝났고, 다만, 부모님께 죄송할 뿐이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내 인생에게도 미안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자기중심적인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학수와 같은 아들이 되고 싶다.     


“우리 아부지 이리 맹근 사램이 누구요? 존 말 헐 때 나오씨요이! 나가 어른이고 자시고 다리몽뎅이를 열조각으로 뿌사불랑게.”     


“씨부럴! 당신들은 손이 읎어 발이 읎어? 왜 우리 아부지가 나무를 타!”     


소주 한 병에 피로를 푸는 아버지, 티 한 벌 잘 사입지 않으시는 어머니, 

아들, 딸 챙겨줄 생각뿐이신데, 나도 다시 일어나고, 돈도 많이 벌자     


문재인 전대통령 추천 책이라고 하여 읽어봤는데, 좋은 책을 읽은 것 같다. 다음 책도 문재인 전대통령이 추천한 좋은 불평등이라는 책을 읽어보고자 한다. 단지, 나의 지적 게으름으로 독후감을 조금 더 내실있게 작성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편하게 글을 써야 계속 쓸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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