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이유와 기쁨
이 글은 학창 시절에 지지리도 공부 안 하다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도 못 간 못난 아들이 성인이 되어 취업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고 학창 시절을 방탕하게 보낸 것을 후회하고, '나의 아이들에게는 공부에 대해 이런 점을 강조해야겠다.'라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읽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커뮤니티에서 어떤 학부모가 고등학생 자녀의 사교육비 지출 내역을 공개한 것을 봤다. 지금의 나로서는 지불할 수 없는 한 달에 180만 원이라는 거액을 사교육비로 지불하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는 댓글 반응을 살폈다. 댓글에는 '방학인데 선방하셨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대한민국이 사교육 공화국이 된 이유는 뭘까? 당연히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나도 사교육을 무조건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나도 아이가 원하면 사교육을 시킬 의향이 있다. 그러면 사교육에 돈을 쏟아부으면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하게 될까? 내 생각으로는 그런 아이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을 거 같다. 그 이유는 부모가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나 자식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채로 무작정 사교육을 시키는 것은 해외여행 가면 좋다는 말만 듣고, 가고 싶은 곳도 없으면서 맹목적으로 여행사의 패키지여행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기 전에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나는 우선 부모가 교육에 대한 가치관, 그중에서도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와 공부를 하며 느끼는 기쁨에 대해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잘하면 보상을 내렸지만, 공부를 하지 않거나 공부를 못하면 때렸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공부를 이유로 나를 때리고, 심지어 돈 내고 다니는 학원에서도 고객인 나를 공부 때문에 때렸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맞으며 공부를 하다 보니 그래도 중학교 2학년까지는 공부를 좀 했다. 반에서 10등에서 5등 정도의 석차를 유지했다. 그러다 심하게 사춘기가 왔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로 공부하는 불만이 터져 파업을 했다. 학원을 안 가고, 배회하다 집에 늦게 들어갔다. 그러다 나는 결국 공업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대학교는 못 갔다.
성인이 되고 내가 제일 후회하는 게 학창 시절에 공부를 안 한 것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 텐데."라는 후회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공부란 죽을 때까지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어서 나는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문제해결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공부를 해야 문제해결 능력이 오른다고 말하면, 와닿지 않는다. 마치 '주식으로 수익을 내려면 쌀 때 사고 비쌀 때 팔라.'는 이야기와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해결능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실생활에서 부모가 자식들을 문제 해결 하는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부모들이 실수하는 말 중에 "대학만 가면.", "취업만 하면."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인생은 대학을 가도, 취업을 해도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 시작한다. 그렇기에 문제해결능력은 우리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실제 생활에서 들여다봤을 때, 대학을 가서 자취를 할 때에도 방을 임차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취업을 했을 때에도 업무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고, 아이들을 키울 때에도 씻기는 법, 먹어도 되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 재우는 법, 달래는 법, 발달을 돕는 법 등 육아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심지어 개를 키울 때와 새로 카메라를 샀을 때에도 그 조작법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공부해야 하는 것 투성이다.
만약 공부를 안 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초등학생도 할 줄 아는 키오스크 기계에서 주문하지 못하고, 직원을 불러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건 단순히 직원을 부르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이미 사회에서 도태되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중, 장년들이 키오스크 기계 앞에서 "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하며 툴툴 대는 것은 본인들이 변하는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욕구불만이 터져 나온 것일 터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 국어를 통해 문해력을 기르고, 수학으로 논리를 키우며,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미술로 아름다움을 배우고, 음악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법, 체육으로 몸을 쓰는 기쁨을 배우는 것이다. 이런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아이에게 공부하라며 등 떠미는 것은 목적지도 모른 채로 그냥 일단 걸으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그리고 배운 것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아이에게 끊임없이 보여주며, 아이가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집에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와 함께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함께 해결하거나, 부모가 하루를 보내며 겪은 문제나, 아이가 하루를 보내며 겪은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며 답을 찾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면 자연스레 공부를 하게 되겠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공부하고 배우며 깨우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는 맞기 싫어 공부했고, 어른이 되어 입에 풀칠하기 싫어 공부했다. 전부 다 하고 싶어 한 공부가 아니었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 아이들이 태어날 무렵에 재테크와 육아를 공부하며 배우고 깨우치는 기쁨을 경험했다.
아직 부를 이루지 못했지만, 재테크를 공부하며 재미도 있었지만, 나는 다시 미래의 희망을 보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생활의 활력을 얻었다. 그리고 육아를 공부하며 아이들이 내가 공부한 것에 맞게 감화되어 반응을 해주면, 스스로 성취감에 취해 쾌감을 느꼈다. 나는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치게 하고 싶다면 부모가 그런 기쁨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려면, 책을 아이들 가까이에 두고 가지고 노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처럼, 부모가 아이 앞에서 티브이를 끄고 공부하는 모습과 공부하며 깨우친 것에 대해 아이에게 말해주며 기뻐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고, 아이가 궁금해하며 질문한 것을 함께 도서관에 가서 그 답을 찾고, 답을 찾았을 때 함께 기뻐하는 경험을 쌓으면 아이는 공부하는 기쁨을 충분히 경험하고, 스스로 공부를 추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사교육을 하기 전에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아이와 함께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공부하는 즐거움에 대해 많은 소통을 하고 경험을 쌓는다면 사교육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또 사교육에 돈을 많이 들여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