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들기 전에 하브 에커가 지은 <백만장자 시크릿>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봤다.
궂은날을 위해 저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나는 책을 읽던 것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처음 스스로 노동을 하여 돈을 번 것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미성년자 동생을 위해 나의 누나는 선뜻 자신이 일하던 패스트푸드점에 나를 소개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달에 40만 원 정도의 돈을 받으며 당시의 고등학생 치고는 꽤 큰돈을 용돈으로 쓰며 지낼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직장에 입사하고 받은 월급은 이백만 원 정도였다. 처음으로 쉼표가 두 개나 들어가는 금액을 받은 나는 참으로 만족했다.
그때부터가 나의 잘못이 시작되었던 거 같다. 나는 그 쥐꼬리만 한 월급에 만족하면서부터 돈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다. 나는 매월 월급명세서에서 실수령액 총액만 확인하고, 다른 것들은 관심에도 두지 않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아내와 맞벌이를 하니, 부유하지는 않아도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었으며, 1년에 해외여행을 2번 정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대출금을 꼬박꼬박 갚고, 적지만 적금도 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더욱 돈에 관심이 없어졌다.
들숨을 쉬니 공기가 폐로 들어오고, 수도꼭지를 트니 물이 나오는 것처럼 나와 내 아내가 일을 하니 돈이 있었다
그러나 쌍둥이 별이와 빛이가 태어나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는 부모 손에 자라야 한다는 일념 하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부부가 돌아가며 육아휴직을 쓰며 외벌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사고 싶은 것도 사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아야 했으며, 해외여행은 커녕 국내여행도 큰 맘을 먹어야 했다.
참 어리석게도 그제야 나는 돈에 눈을 떴다. 그래서 나는 닥치는 대로 경제와 재테크 공부를 하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일을 벌이며 나의 자식들 별이와 빛이에게는 돈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이것도 잘못된 생각이었던 거 같다. 나는 불순한 의도로 돈을 좇기 시작한 거였다. 나는 즐거운 날을 위해,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그날을 위해 돈을 좇는 게 아니라, 그 간 내가 저질렀던 나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현재 느끼는 경제적 압박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돈을 추구하며 매일을 궂은날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별것 아닌, 이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관점이 180도 변하기 시작하며, 돈이 참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이 온몸과 온마음에 와닿기 시작했다.
돈은 들숨을 쉬니 공기가 폐로 들어오고, 수도꼭지를 트니 물이 나오는 것처럼 내 옆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돈은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루어 주는 램프요정 '지니' 같은 존재였다.
눈에 띈 예쁜 옷을 사고 싶을 때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은 날에도 돈은 내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나를 위로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고, 내가 가정을 이루고 별이와 빛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의 조력자였다.
여기까지 정리가 되자 그동안 내가 매번 허탕을 친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돈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 줄도 모르면서 돈을 좇아다녔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미래의 청사진을 그렸다. 가난을 물려주기 싫어서, 돈에 대해 무지한 것이 싫어서, 경제적 압박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것이 아닌, 가족들과 평화로운 나날을 여유롭게 즐기는 행복한 시간을 위해서 경제적 자유를 꿈꾸기로 그 목적을 새로 수정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어떤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화창한 날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멋진 저택의 거실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느긋하게 책을 읽는 나와 옆에서 떠들며 놀고 있는 아내와 별이, 빛이, 그리고 반려견 흰둥이와 로이의 이미지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돈에 대한 감사함을 깨달은 환희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