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서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옷만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후 출근하듯이 공유 오피스의 싱글룸을 차지하고 앉는다. 간밤에 눈이 벌게지도록 보고 또 보고 수집한 이미지를 출력하면서, 뜨거운 캡슐 커피를 내린다. 음, 오늘 내린 커피는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군. 앞으로는 빨간 캡슐만 내려 먹어야겠어. 싱글룸에 돌아와 앉은 나는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한 모금 마시고는 이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난 빨간 캡슐이 정확히 무슨 커피 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실 크게 관심 없다. 왜냐하면 나는 차를 좋아하는 차덕이고, 커피를 내 돈 주고 사 먹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에만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그 밖의 일엔 매우 냉소적이다.
본격적으로 자리에 앉아 출력한 흑백 이미지를 내 멋대로 오리고, 조합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조금 과한 것 같다. 그래도 그냥 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관찰하며 나의 상상력을 동원한다. 그 다음 얇아서 팔락거리는 스케치북에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를 재현한다. 내 머릿속엔 이것저것 다양한 장면이 펼쳐지는데, 노란 색연필과 까만 흑연으로 만들어진 4B 연필만으로는 나의 상상을 모두 표현해내기가 어렵다. 불현듯 물감, 물감이 그립다. 색이 있지 않아도 좋으니 꾸덕하면서도 미끄덩한 물감을 올리고 싶어 참을 수가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케치를 보면 내 머릿속엔 나만의 바다가 파도친다. 이 과정이 너무나 즐거워서, 다가오는 상담 치료 시간을 잊어버릴 것 같다.
작업하면서 오디오북을 듣는다. 음악보단 나에게 훨씬 더 좋은 영감을 줄 것 같아서 선택했다. 과연, 옳았다. 창작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작가들의 말 못 할 고충을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한 걸 귀로 들으며, 나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그들의 우중충한 감정에 동화되어 우울감을 느끼다가도, 이 역시 창작과 연결된 순간임을 자각하며 고조되는 기분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마구 떠오르는 나의 마음을 서둘러 글로 표현하기도 한다.
문득 이 생활이 너무나도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각종 미술관을 돌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 회사일을 하지 않으니 내가 직접 많은 자양분을 나에게 퍼다 줄 수 있고, 내 안에 때려 박는 게 많다 보니 여기저기 영감이 넘쳐흐른다. 이 과정이 너무나도 자유롭고 즐겁다. 작가라는 건 내 천직일지도. 그러나 이것도 휴직 중임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내 통장에 꽂히는 월급 덕분이겠지. 지금 듣고 있는 책의 작가 중엔 글이 너무 좋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작가가 되는 걸 택했는데, 글이 생계유지의 수단이 되면서 쓰고 싶지 않아 지는 기현상을 겪는 작가도 있었다. 나도 경제적 기반을 잃으면 그렇게 될까? 몹시도 궁금하지만 섣불리 예단하진 않기로 한다. 이제 알잖아,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 어차피 곧 겪게 될 일인데 미리 걱정해도 쓸데가 없다.
누군가는 나에게 작가가 되기도 전에 설레발을 친다 말할지 모른다. 정신의학 전문가가 보기엔 평범한 조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결심했다. 작가가 될 거라고.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저자가 말했다. 작가란 자기 자신을 작가라 명명하고 남에게 작가라 소개하면 그때부터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어차피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나도 20년 전쯤엔 음악이 내 최고의 영감이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음악 대신 책을 듣잖아. 평범한 회사원이 작가가 되는 게 뭐 대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