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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om P Jul 10. 2024

노을

시간이 '조금' 흐른 뒤

 A는 커리어우먼이다. 우먼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조금 어리고, 걸(girl)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조금 나이가 들어버린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A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꽤'라는 단어를 써야 할 상황에 '조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A는 커다란 상황이나 감정의 변화를 작은 인형 정도의 크기로 축소해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A와 카페 나들이를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A는 호수 위로 흩어지는 노을과 '조금'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A는 나의 아픔을 안아주는 사람이었다. A는 마음은 노을을 품은 호수만큼이나 넓었다.


 A는 커리어우먼이다. 가끔 업무차 전화를 받는 A의 모습을 보면, 내 거래처의 능숙한 과장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나에게는 차갑거나 딱딱했지만, 누군가에게는 호수와 같은 사람일까?


 A는 가끔 나에게 서운함을 토로한다. 내가 주는 서운함의 대부분은, 내 안에 A가 아닌 나 자신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힘들게 '나'의 아픔의 이유를 찾고 '나'를 고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연인이 최우선이던 때와 다른 상황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 안에 A를 최우선으로 놓을 수는 없다. 그것을 A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바라지 않는다고 서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A는 가끔 나에게 서운함을 토로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아픔이 완치되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예전처럼 웃으며 회사에 다닌다. 나는 예전처럼 A를 내 마음의 가장 큰 주인공으로 둔다. 나는 예전과 달리 나와 남들에게 관대해진다. 나는 예전과 달리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나는 예전과 달리 나를 사랑하게 된다. 이 때문에 A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때가 되면 다시 한번 A와 함께 카페 나들이를 가고 싶다. 호수 위로 낙엽처럼 흩날리는 노을빛에 비친 A의 옆모습을 보고 싶다. 그때는 '조금' 더 한껏 A로 인한 벅찬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A가 읽는다면 나는 A에게 말하고 싶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아직은 내 안에 내가 '조금' 많이 차올라 있다. 그것을 고치는 데에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조금'들의 끝, 그때가 오면, 너와 함께 노을을 보고 싶다.


 환자는 이기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기적이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환자는 자기 자신의 아픔으로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인 것입니다. 어쩌면 이기심도 아픔 중 하나가 아닐까요.


 나는 환자입니다. 그래서 이기적입니다. 이것은 변명이 아닙니다. 진단에 가깝습니다. 환자의 옆을 지키는 사람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환자가 너무나도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환자는 베풀 줄을 모릅니다. 환자는 자기 자신의 아픔을 움켜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 과일 한 점 깎아주지 못합니다. 그저 아픔을 움켜쥐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소중한 이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서운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서운하게 한 것입니다. 이 모든 시간의 끝에 완치된 내가 서있다면, 그런 나는 온 힘을 다해 보답하고 싶습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시간의 끝에 죽음이 아닌 완치된 나를 세우기 위해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합니다. 내가 나의 치유에만 눈이 멀어 서운한 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한 노력이라니, 이것은 희극 같은 비극입니다.


 지금 나의 상태가 희극이건 비극이건, 이 괴로운 시간의 끝에 온전하고 강인한 내가 서있기를, 그래서 나를 보살핀 모두에게 보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 아픔을 다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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