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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남주 Dec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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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 미라클 글쓰기 챌린지 10기 7일차

둘째와 셋째가 싸웠다.

자매지간에 일어난 싸움이다. 


"엄마, OOO가 나를 스물여섯 번 때렸어."

둘째가 다른 방에 있는 나에게 건너오며 말했다.

(둘째는 동생을 칭할 때  항상 '성'까지 붙여서 말한다.)


사실 나는 건넌방에서 둘이 투닥투닥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가서 중재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퇴근 후, 심신이 무척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언니를 때렸어?"

"그게 때린 거지 아니야?"

"응, 아니야"

"이젠 내 차례다. 내가 너 때릴거야."

"나 때린 거 아니야. 언니 발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는데?"

"원래부터 거기 있었는데. 네가 온 거잖아, 그걸 몰랐다는거야?"

"그럼 언니가 발을 빼야지, 안 피했어?"

"니가 나를 몇 번 때리는지 세고, 나도 똑같이 널 때리려고 가만히 있었다"

오고가는 대화의 순서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말들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내가 둘째랑 꼭 붙어서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고 있었다.

이때 거실에서 수학숙제를 하던 셋째가 방으로 들어왔다.

셋째는 나와 첫째의 공간에, 시간에 끼어든 것이다. 

엄마와 언니가 꼭 붙어 있는 거에 질투를 느낀 것이다. 

둘째는 동생의 그 마음을 안다. 나도 물론 안다. 

그래도 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그때부터 셋이서 뒹굴뒹굴 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내가 먼저 일어나 방을 나왔다.

이때부터 침대에 남은 자매의 충돌이 시작된 것이다.


셋째가 손으로 이불 어딘가를 툭툭 치고

(특별히 때리려는 의도는 없었던 거 같음)

그 이불 아래 둘째의 발이 있었고

(딱히 피하고 싶지 않았고, 피할 만큼 아픈 것도 아니었던 거 같음)

동생이 툭툭 칠 때마다 언니는 숫자를 세었고,

(나름 덫을 만들기 위해, 구실을 만들기 위해)

셋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몰랐다고 하지만, 언니의 속을 알고는 계속한 거 같음)


그렇게 된 거다.. 

자매 간의 자존심 싸움.


둘째는 동생이 언니를 언니로 대접해주지 않아 항상 불만이다.

그리고 왜 내가 동생을 따끔하게 혼내지 않는지도 항상 불만이다. 


"엄마, 나 OOO 때려도 되지?"로 시작해서 동생이 잘못한 것을 말한다.

둘째는 눈물까지 흘렸다.

오늘 나는 그런 둘째를 위로할 여유도, 받아줄 에너지도 없었다. 

눈도 감고, 입도 닫고, 귀도 막아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엄마가 되었다.


"엄마 피곤해, 학교에서도 싸우는 애들 이야기 다 들어주고, 혼내주고, 중재해주고, 서로 화해시키고 맨날 그러는데, 집에서도 그래야 해?"

"니가 동생 성격 알잖아? 그냥 좀 받아주면 안 돼?"

"넓은 마음으로 그냐야 좀 넘어가면 안 되겠어?"

"너희는 도대체 왜 싸우는 거니? 엄마랑 이모는 어렸을 때 싸운 적이 없어. 그래서 너희 둘이 싸우는게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엄마는 관여하고 싶지 않아. 너희 둘이 알아서 해, 제발!"


독한 말이었다.

오늘만큼은 이 말은 진짜 내 진심이었다.


그러고는 잠깐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눈을 떠서 한 글벗님께서 단톡방에 공유해 주신 노래를 들었다. 

다음은 이 노래의 가사이다. 


숨죽여 울지 마요 그 불 꺼진 방 안에서 알아요 알아요 얼마나 힘든가요 물 새듯 빠져나간 그 희망과 노력들이 허한 표정과 한숨 남겨줬나요 그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쉬어가도 끝난 게 아니니까 캄캄한 아침 무거운 매일 끝없는 미로 속을 걷는 우리들 허나 결국 그대는 답을 찾을 거예요 같이 울고 같이 들고 같이 가면 덜 지치고 덜 외롭게 걸어요 터지는 생각들로 잠 못 들고 힘든가요 알아요 그 마음 나 또한 늘 그랬죠 가슴 속 불덩이가 자던 숨을 짓누르면 뛰쳐나가 밤새 뛰던 미친 밤 그댄 넘치게 잘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틀렸어도 끝난 게 아니니까 캄캄한 아침 무거운 매일 끝없는 미로 속을 걷는 우리들 허나 결국 그대는 답을 찾을 거예요 비춰주고 잡아주며 같이 가요 사람마다 계절이 있어요 내 계절에 활짝 피게 정신은 맑게 햇빛에 서서 그때를 기다려요 소중한 사람 그댄 빛나는 사람 조금만 더 힘내요 같이 울고 같이 들고 같이 가면 덜 지치고 덜 외롭게 걸어요


노래를 부른 사람은 '임재범'이고, 제목은 <위로>이다.

가수는 알고 있었는데, 노래는 처음 듣는다. 

이 노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목소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진심으로 위로를 받았다.

빛나는 사람! 딸이 떠올랐다. 

위로를 받으니 딸을 다시 바라볼 힘이 생겼다. 


침대에서 나와, 딸을 찾았다.

거실에서 패드로 영상을 보고 있는 딸에게 다가갔다.

앉아있는 딸의 얼굴을 두 팔로 꼭 안아 내 품에 넣었다.

얼굴을 마주 볼 용기는 없었다.

무슨 말을 꺼낼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나에게 화가 나 있던 딸은, 내 품에 가만히 있었다.

조용히 운다. 내 눈에도 딸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우리 예쁜 딸, 엄마가 미안해.'


딸의 이야기 좀 들어주고, 

딸의 마음 좀 받아주고, 

딸에게 조금의 따뜻한 반응만 보여주면 되었을 것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사자성어가 불쑥 떠오른다.

애들 문제는 되도록이면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빨리 처리하고 해결하는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방치하다 일이 커졌다.


싸우는 딸들을 보면 진짜 모르겠다. 

둘째는 종종 말한다, 엄마의 사랑을 셋이 나눠야 하니 그렇다고.

둘째는 엄마가 자기에게 보내는 사랑이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걸 늘 표현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중2에게 아직도 엄마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

.

.

맞다. 필요한 것이다. 

나를 사랑해 주는, 나를 좋아해주는 둘 딸들.

진심으로 고맙고

진심으로 감사하다. 

눈물날만큼.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위로를 받아야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위로라는 것은,

알고 있다고 표현해 주는 것

같이 해주는 것

그게 다인 것을.

사실 별거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끝.


(2024년 12월 22일 수요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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