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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서 Jul 16. 2024

땡큐, 파슬리 : <콰르텟>

땡큐, 파슬리 : <콰르텟(2017)>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탕수육 부먹 vs 찍먹에 대한 뜨거운 논의는 결국 '배려'의 문제로 귀결됐다. 문제는 '물어보지 않음'에 있었다. 찐득한 소스가 부어졌을 때 튀김의 본질적 바삭함이 사라지는 것 자체에 대한 분노보다, 함께 식사 중인 당사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당연히 부어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대의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한국에 탕수육이 있다면, 일본은 가라아게(닭튀김)다. 네 명의 남녀가 다함께 가라아게를 먹으려 한다. 접시 위에는 방금 튀긴 따끈따끈한 가라아게와, 그 옆에 레몬조각이 놓여있다. 누군가가 한치의 의구심도 없이, 당연하다는듯 레몬을 집는다. 양쪽에서 꾹 눌러 한바퀴 빙 두른다. 상큼한 레몬의 과즙이 촉촉하게 가라아게 위로 떨어진다.

 

  그럼, 잘먹겠습니다~  


  한 명만 빼고.


  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다는듯 불퉁한 얼굴로 젓가락도 들지 않은 채 윤기나는 가라아게를 팔짱 끼고 바라만 보고 있다. 어라? 왜그러세요? 허겁지겁 뜨거운 가라아게를 호호 불며 먹던 사람들은 그제야 그의 눈치를 본다. 그는 어째서 당연한듯이 레몬을 뿌리는지, 레몬을 뿌릴지 말지에 대해 상대에게 묻는 것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한다. 뭐 그런걸로 그렇게 열을 내냐는 말에 흥분의 단계를 한번 더 올리는 남자. 그런 남자를 멀뚱히 바라보는 둘. 그리고 남자를 이해하는 듯한 표정의 하나.


  우연히 제1 바이올리니스트, 제2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비올리스트가 같은 날 노래방에서 만나 마침 서로의 뜻이 맞아서 콰르텟(4중주)을 결성할 확률은 미묘하다. 넷은 숲 속의 펜션에서 호흡을 맞추며 백화점이건 동네 행사건 연주할 기회만 준다면 어디든 간다. 이토록 열정적인 네 명이, 어쩜 악기 하나 겹치는 것 없이 마치 서로를 기다려왔다는듯 자연스럽다.


 이런 이야기에는 대게 '비밀'이 있다.  '어른은 비밀을 지킨다'는 주제곡 가사처럼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개개인의 사정, 우연을 가장한 만남, 밝히지 않은 꿍꿍이를 제 안에 간직한 채 무렇지 않은듯 식탁에 둘러앉아 웃으며 밥을 먹는다. 그들이 모인 순간부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각각의 인물을 쫓는다. 하지만 이러한 속셈이 무색하게, 각각의 비밀은 대범하지만 동시에 허무히 드러난다. 작품은 우리에게 순순히 패를 내놓으며 묻는다.


 어때? 뭐가 달라졌어?


 네 명이 각자 숨겨놓은 어떠한 사실은 우연히, 누군가의 고발로, 혹은 신의 장난으로, 그 베일이 벗겨진다. 그러나 누구도 그 진실을 마주하고서는 배신감에 치를 떨지 않는다. 울거나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매일 타는 지하철역의 광고판이 바뀐 수준의 변화, 광활한 바다에 조약돌 하나 던져보는 수준의 파장인양 아무렇지 않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설사 우리가 모든걸 내보이지 않았더라도,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에. 저이에 대한 몰랐던 부분을 어느날 알게 되었다. 그럼 어제와 그는 다른 사람인가? 콰르텟의 4인은 이 질문에 대해 그저 빙그레 웃는 것으로 대답한다.


  오늘도 식탁 위에는 가라아게가 올려져 있다. 이번에는 다들 익숙히 제 접시에 가라아게를 덜고, 그 위에 레몬즙을 뿌린다.


  그럼, 잘먹겠습니다~


  한 명만 빼고.


  이번엔 대체 뭐가 불만인거냐는 물음에, 남자는 한껏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여기 파슬리 있잖아.


  파슬리에 대한 호불호와 관계없이, 요리에 제대로 올라가 한 부분을 차지하는 파슬리의 존재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열변과, 관심 없다는 둘. 그리고 남자를 이해하는 듯한 표정의 하나.  


  그렇다면,


  "땡큐, 파슬리"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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