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체 인간,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맞을까?
5월에 읽었던 Trust. 지금은 어느새 찬바람이 불지만 날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책을 펼치면 소제목이 등장하는 데 아래 저자 이름도 등장한다. 이 책은 Trust이고 저자는 에르난 디아즈인데 이게 지금 무슨 이야기인가..싶어서 읽어내려가는데 읽어도 읽어도 이게 지금 무슨 이야기인가 싶다.
그러다 2부가 되고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싶고, 이 소설이 상을 받은 소설이랬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다가 요즘 시대에 이런 가부장적 스토리로 어필한다고?라는 생각이 또 머리를 스치면서 3부에 도달하게 된다.
절반을 잘 읽어내면 그 뒤에는 이 소설이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씩 손에 잡히게 된다.
내가 식견이 짧아 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읽으면서 분명 이건 당대 실제 미국의 역사를 많이 반영하고, 여러 문학 장르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여 머리가 복잡하면서도 재미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를 보면 뭔가 재밌는데 잘 모르겠지만 흥미롭고 더 알고 싶은데 내가 이해하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고 그런 느낌을 받았달까?
두 주인공 앤드루와 밀드레드의 삶을 아주 다각도로 서술한 책이다. 여러 사람의 시선에서 그려진 두 사람의 삶은 챕터 하나 하나가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 여기에는 자신이 바라보는 시선도 포함된다.
일견 내가 바라보는 나 자신이 가장 정직한 나에 대한 묘사가 아닐까 싶지만 여러 면에서 한 인물을 바라본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이 선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보는 내가 더 맞는 내 모습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우선 외부에서 보는 내 모습은 내가 처한 상황 다시 말해, 나의 직업, 사는 곳, 외모 등등에 의해 제한된 내 모습을 가지고 사람들이 판단한 모습이다. 거기에 상황마다 내가 보이는 모습은 또 다를 수 있으니 모두에게 내가 같은 모습으로 보이진 않을테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은 어떨까? 과연 나는 나를 제대로 직시하고 인정하는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내가 모르는 남들만 알아차리는 내 모습도 있을 것이고, 내가 나를 속이며 애써 나라고 믿고 싶은 내 모습도 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제대로 직시한다 한들 그게 정말 나의 전부일까?
우리가 앞을 바라보면 우리의 뒷모습이 안보이고 내 옆의 시야도 한정되듯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포함해서 무엇을 보든 어떤 한 측면에서만, 일부만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생각보다 깊고 넓겠지만 나에게 가장 크게 와닿았던 부분이다.
과연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지, 전혀 그렇지 않아도 괜찮은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그렇게 조각 조각 모두 모여야만 온전한 내가 되는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소용돌이 치는 미국의 역사라던지(특히 금융), 여성의 사회적 삶과 여성의 내면, 결혼생활 등 더 깊이 고민해보고 싶은 주제가 마구마구 떠올랐다.
다 읽고나서 여운은 길었지만 알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린듯 힘겹게 읽었기 때문에 더욱 다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