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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가람 Apr 06. 2023

#1. 모든것이 그랬듯,  백패킹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안무거워요?"

지하철 안, 내 바로 앞에 앉아 좀전부터 미간을 찡그린채 내가 둘러멘 가방과 나를 번걸아 쳐다보던

중년의 여성분이 물어왔다.

"아.... 괜찮아요, 가방이 커보이긴 해도 실제로는 별로 무겁지 않아요...." 라며 씽긋 웃어보였다.

내가 지어보인 웃음은 '난 정말 무겁지도 않고, 지금을 즐기는 중이니' 더이상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내 가방을 바라보지 말아달라는 무언의 요청이었음에도, 그녀는 다시 나를 향해 혼잣말을 내뱉었다.

"편한 집 놔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한데...."

예상치 못한 그녀의 혼잣말에 내 얼굴은 이내 달아올랐다.

좀전까지 괜찮았던(심지어 멋있어보이기까지 하던)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문득 우수꽝스럽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의 말대로 어쩌면 사람도 담을듯 이 큰 가방을 메고 나는 왜 굳이 집을 나섰을까?

그것도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이 황금같은 주말에 말이다.


코로나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실은 난 전문적인 백패커가 아니었다.

꽤 오래전부터 집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을 즐기는 아웃도어형 DNA를 가지고 있었지만,

차에 침실과 거실이 구분되는 거대한 텐트(사람들은 이런 텐트를 리빙쉘텐트라 부른다)

릴렉스체어, 테이블, 심지어 야전침대에 푹신한 매트까지 싣고 다니며 최대한 편하게 생활하는 것을 추구하는 통상의 대한민국 캠퍼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하루밤, 자연에 신세지기 위해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지하철에 서게 된 건!

순전 코로나 탓이다.

코로나 이전엔 분명 내가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장소에서의 캠핑이 가능했다.

소문난 캠핑장의 실시간예약 현황에도 나 하나 비집고 들어갈 사이트(Site) 하나쯤은 언제든 비어있었다.

심지어 캠핑 당일 현장결재도 가능했기에 캠핑만을 위한 다른사람과의 경쟁은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름해변에서 즐겨마시던 맥주와 같은 친숙한 이름의 질병(코로나19)이 전세계를 강타했다.

사스며 신종플루와 같이 이내 정복할 수 있을것으로만 생각했던 녀석은 여름철 장마처럼 지리하기만 했다.

질병은 해를 넘기고 또 한해를 넘기면서 거시적으로는 전세계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영향을 미쳤고,

미시적으론 그들의 취미생활마저 간섭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더이상 폐쇄된 공간에 장시간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타인과의 물건을 공유하는 것

또한 꺼리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큼은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여행의 양식과 규범을 송두리째

바꾸는 단초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엔 캠핑붐(Boom)이 일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던 캠핑장의 실시간예약 사이트에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내가 가려는 날은 예약을 시도하고 있는 오늘로부터 약 2주 후인데도 말이다.

예약없이 불쑥 캠핑장에 찾아가 현장에서 결재하던 지난날에 비추어봤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비단 캠핑장 예약에 그치지 않았다.

내가 가진 캠핑 장비 중 하나가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망가져버렸다.

평소 쓰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던 장비라 똑같은 것을 새로 구비하려고 매장에 방문했지만

그 많던 캠핑장비는 매장 전시용만 남겨두고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으며, 제품의 가격을 붙여둔 택(tag)에는 Sold out 이라는 글자만 선명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에 캠핑시대가 열린것이다.


캠핑!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이제 대한민국에서 캠퍼로 살아간다는 것은

레드오션의 환경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캠핑장 예약은 하늘에 별따기였고, 내가 원하는 캠핑장에서의 하루를 위해서라면

암표라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가미가 약한 물고기와 같아서 이 도심 속에서만 살아 갈 수 없다.

가끔은 생존에 필요한 호흡을 위해 도시 밖으로 나와 아가미가 아닌 폐 깊숙히 공기를 담아야

한주 혹은 몇주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가여운 생명체이다.

고로 나는 생존을 위해 고심해야 한다. 저 열정가득한 신규 캠퍼들과의 경쟁을 피해

도시 밖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인터넷으로 캠핑장 실시간 예약 사이트를 이잡듯 뒤지다 뜻밖의 사진을 발견했다.

거대한 가방을 메고 산을 오르는 무리의 사진이었다.

그들은 정규 캠핑장이 아닌, 산 위 전망대 데크나 헬기장 또는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노지에서의

캠핑을 위해 생존템들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백패커들이었다.

나도 모를 한숨이 식도를 통해 넘어왔다.

한숨은 마치 위장 가득 막혀있던 음식물이 식도를 통해 한꺼번에 넘어오는 것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꽤 오래동안 내뱉어졌고 이내 머리속이 맑아졌다.

아마도 '이제 나는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캠핑보다 제약이 많아 아직 사람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백패킹은 분명

떠오르는 블루오션이었다.


첫 백패킹을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블로그며, 인스타 검색은 물론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백패킹 관련 책까지 구입했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내 생존이 달린 이 백패킹을 위해 이미 나는 못할 것이 없었다.

며칠동안 백패킹과 관련된 내용의 글과 사진을 정독하고 탐닉했다.

가방은 어떤 것을 사야하는지, 그 가방엔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사람들이 선호하는 노지의 종류와 장소는 어떠한지

그리고 그것들을 실행에 옮기는 데 나에게 필요한 예산은 얼마인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룻밤을 위한 장비였지만,

박지의 상황이나 컨디션에 따라 살 것은 많았고, 각각의 종류는 더더욱 많았다.

내가 가진 예산은 언제나 그렇듯 제약적이었고

그 한계 안에서 최고의 가성비를 가진 장비를 찾아내는 것이야 말로

성공적인 백패커가 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으로 검색을 멈추지 않은 결과

신품과 중고품이 적절히 섞인 나의 첫 백패킹 키트(kit)가 탄생했고,

난 그 키트를 둘러메고 거침없이 지하철에 올랐다.

(내가 구비한 키트에 대한 상세 설명은 차차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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