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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별 Nov 03. 2023

낭만에 관하여

오랜만에 오니까 제목 구조를 맞추기 싫어졌습니다, 뭐요

2023.11.03

12시 20분


면접 이틀 전 새벽이지만서도, 이 생각을 남겨두지 않으면 좀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에 일어나서 남기는 글이다. 나는 ‘낭만’을 되게 좋아한다. ‘낭만 있었잖아~’가 내 말버릇이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낭만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어쩌다가 그렇게 낭만을 꿈꾸게 되었는지 말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대학에 와서 나는 되게 많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깨졌다는 게 상사나 선배한테 꾸중을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간 한번도 고민해보고 의심해보지 않았던 내 사고의 특정 부분들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면접 답변만 하면 사회학과스러운 답변을 내뱉게 된 것도 그런 이유 아니었을까? 아무튼 재밌는 점은 내 주변의 동기들도 그런 주제를 가지고 (술 마시면서) 떠드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는 점이다. 안 좋아했는데 그냥 내가 떠들어서 맞춰준 것이라면 뭐 아쉽게 됐다. 그렇지만 나는 매우 재밌었는데, 이 낭만의 경우에도 그랬다. 


김oo 교수님의 수업을 듣다가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수시와 정시를 논해보고, 수행평가와 중간 기말시험을 논해보았다. 그 수업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주제는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혹은 과정이 중요한 것인가 결과가 중요한 것인가.’였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나서 단체로 하키복을 입고 사진을 찍기로 한 날이 되었다. 사진을 찍고 술을 먹는 와중 ‘과정이 중요한가, 결과가 중요한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실 그날 만취했기 때문에 누가 대화주제를 꺼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나였겠지 뭐. 그럼에도 김o이 최oo에게 잔뜩 화를 내며, ‘수행평가는 결국 과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더 자주 내는 평가방식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형이 술 먹고 최oo 답답해하는 장면이야 매번 보던 것이기에 기억에 남을 일은 아니지만 결국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제안한 방식도 결과를 보고 있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아, 그날 나는 최oo이랑 김oo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우겨서, 그냥 쟤네 열 받으라고 결과가 중요하다고 우겼던 듯하다. 그러나 내심 둘이 말하는 것처럼 과정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내가 사회학과에서 가장 많이 ‘깨진’ 부분은, 내 성취의 일정 부분이 내 노력과 관계없는 부분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 과정에 대한 죄책감을 일정 부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죄책감까지 가질 필요가 있었나 의문이지만. 뭐, 그날 워낙 술을 많이 먹었으니까. 그런데 그 와중에 ‘아무도 과정을 평가하여 그에 보상을 주지 않는다, 방법도 없다.’고 말하는 김o의 말을 들은 것이다. 원래 형이야 “그럴 수도 있어~” 보다는 “그게 맞아” 라고 말하는 타입이니까 넘어갈 법도 했지만, 그 다음날 술이 깨고 나서도 이 발언에 대해서는 괜히 반박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과정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게 가능할까?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방안이 없어 보였다. 과정에 평가를 내리고 보상을 내리는 순간 과정은 다시금 새로운 결과가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 누가누가 더 힘들게 성공했나 콘테스트가 열릴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과정은 그냥 ‘결과 발사대’고 ‘결과 손잡이’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그런 대답을 내리기 싫어서 내가 찾아낸 대답이 바로 낭만이었던 것 같다.


낭만이 있어서 과정은 중요하다. 과정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평가되지 않는 많은 요소들에 낭만은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같다. 낭만은 적어도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결과로부터 자유로운 가치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서 너무도 가고 싶었던 맛집을, 날씨 탓 혹은 웨이팅 탓으로 가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결과로 따지자면 실패고, 날씨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더 일찍 가게로 가지 못했던 자신을 탓할 차례일 것이다. 그러나 비를 쫄딱 맞으며 급하게 들어간 가게에는 낭만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웨이팅을 해서 먹었던 맛집보다 우리는 비에 젖은 생쥐꼴로 들어갔던 가게 얘기를 즐겁게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낭만있잖아’라고 말하는 순간은 힘들고, 지치고, 불안한 그런 순간들이다. 나를 결과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떨어트려주는 일종의 주문이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내게 중요한 가치들의 서열이 새로이 정렬된다. 결과라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기반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에 더욱이 집중할 수 있다. 주변에 있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욱 노력할 수 있다. 


리트를 보고 나서 갔던 일본 여행은 되게 불안했던 것 같다. 서울대 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가채점을 틀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연세대 자소서만 쓰고 날았고, 서울대 입시설명회도 여행 때문에 못 갔고, 서울대는 150명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50명 기준으로 생각해야한다는 것도 일본에 가서 들었다(몰랐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에 입시라는 큰 결과를 기준으로 나를 판단했기 때문에 막 웃다가도 불안감이 밀려오는 경험을 했다. 폭발성 머리 증후군이라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것도 겪었다. 걱정이 많고 꼼꼼한 편이 아닌 나기에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힘든 경험은 늘 변화의 기회이기도 한 것 같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놀이기구를 타는 순간에 반강제적으로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다. 하늘이 무척이나 예뻤다. 낭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땅을 보고 한숨 쉬며 낭비했던 많은 여행의 날들도 하늘이 예뻤을 것이고, 낭만 있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후의 여행은 낭만이 반 사케가 반이었다. 그렇지만 매우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과정은 과거가 되는 순간 하나의 결과가 된다. 과정을 미래에 엮는 순간 결과를 위한 순간밖에 되지 않는다. 과정이 과정으로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낭만 있는 현재를 즐기는 수밖에 없다.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이 길고 잡다한 이야기를 읽어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낭만있게 살으라고!’ 따위는 아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이미 충분히 낭만있게 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아끼는 사람들에게 “결과가 잘 나올거야!” 혹은 “바라는 일 모두 이루어질거야!” 같은 무책임한 위로를 하는 편은 아니다. 미래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결과를 위해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도 없으면서 떠드는 것 같아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난관을 헤쳐가고 있는 당신들에게 낭만이 가득하다는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좀 넘어지더라도 “방금 낭만 뒤졌잖아.”하고 넘어가길. 


           "면접 이틀 전이지만, 낭만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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