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사실 쫌 합니다
어느샌가부터 국세청 국정감사에는, 고액소송 패소와 관련된 질책이 쏟아집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지방국세청 송무과는 대기업과 관련된 소송이나 승소포상금 같은 부분을 그나마 준비해왔고, 그마저도 인천지방국세청과 같은 2급청은 서울청장 감사 이후에 한두마디 거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사실상 준비를 위한 준비를 해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다릅니다. 전국 어느곳에나 그 지역을 먹여살리는 대기업이 있고, 대기업은 주기적인 세무조사를 받기 마련이며, 크고 작은 액수가 쌓여 세무조사가 끝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불복절차로 넘어가기 때문에, 전국 지방국세청은 고액소송을 수행하게 되고, 이러한 수행과 실적은 국정감사에서 불거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국세청에서 송무과는 빛을 보는 부서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대부분의 납세자들은 성실납세를 하고있고, 소수의 납세자가 불복절차를 밟게 되는데, 조세는 불복절차가 워낙 다양하고 단계가 많아서 조세소송까지 오게 되는 사건도 적고, 심지어 과세전적부심사와 이의신청, 조세심판을 모두 다 거치고 패소한 납세자가 소를 제기하게 되므로 전심절차를 거치면서 쟁점에 대한 법리논쟁이나 사실관계를 모두 검토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송무과 직원들은 전심절차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를 법률문서로 작성하고, 변론을 수행하며, 전국 이곳저곳 출장을 다니는데 심지어 승소포상금까지 받는 부서로 유명했고, 국세청 직원들은 송무과가 쉬러오는 부서거나, 아니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부서였습니다. 심지어 '송무'가 송달 관련 업무를 하는 부서로 착각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자소송이 도입되기 이전 시대, 집중심리제 등이 시행되던 구 민사소송법 시대의 판사님들은 이른바 '국수주의'이신 분들이 많았고, 그래서 당시 소송을 수행한 경험이 있던 직원분들은 "그때가 좋았지"라며 회상하기도 합니다. 아마 승소율도 높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는 2018년에 국세청에 임관하여 조세소송을 담당하였고, 그 전인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인천과 청주지방검찰청에서 행정소송지휘업무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조세소송의 트렌드를 아주 약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트렌드는 단순히 고액조세소송의 패소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로 함축하기에는 조금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일단 고액소송의 패소율이 소폭 증가하게된 이유중 하나는 조세법정주의 때문입니다. 세상은 빠르고 복잡하게 바뀌는데, 이러한 세상을 세법이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규정하기에는 법경제적으로나 입법절차로나 어느 면에서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상자산의 양도차익도 이제서야 겨우 과세를 하게되느니 마느니 하는 상황이고, 그 와중에 채굴이나 디파이 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가상자산 말고도, 기존에는 금을 매수할 권리를 판매하는 상품이 금융상품인지 아닌지와 같은 금융상품의 발전이 국세청을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세법의 불안정성과 불완전성 때문입니다. 조세법정주의는 엄격해석을 요구하는데, 사법부와 입법부는 납세자보호를 명목으로 유연하고 재량있는 해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과세공무원은 납세자보호를 위한 적극행정을 하는 경우 기존에는 감사지적을 당해왔고, 엄격해석을 지키면 민원을 받아왔습니다. 오캄의 면도날같은 해석이 필요하지만, 그 칼이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파이를 먹지 못한 쪽이 항상 비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조세소송능력의 한계입니다. 공무원은 당연히 해야하고, 과세관청이 모든 과세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신고납부의 영역에서 과세관청은 당연히 신고 근거자료 외에는 어떠한 자료도 없고, 외부 학회를 나가면 판사님과 대형 로펌들의 정보교류가 활발하지만, 국세청은 이러한 정보교류가 약한 편인것 같습니다. 어떤 판사님은 '국세청은 규범통제를 할 수 없으니, 사법부가 나서서 헌법수호를 해야한다'는 논문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차마 박수를 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조세소송에서 국세청의 패소율이 높은 이유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여러 전심절차를 거치면서 국세청이 소송에서 패소한다는 것은, 그러한 전심절차가 사실은 크게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사법부는 행정부의 판단을 불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도 듭니다. 불안전한 세법의 입법은 다수의 조세행정속에서 혼란을 야기하고, 국세공무원의 소송의욕을 고취시키기 어려우며, 나라로 들어갈 세금이 대형로펌으로 일부 흘러가게 되는 구조를 만들게 된 것이 아닐까 의문을 갖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