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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캐슬 Aug 24. 2022

대학생에게 편지를 받았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내가 진행하는 모든 대학 강의에는 특이한 과제가 하나 있다



한 학기 동안 노력한 자기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작성하는 것이다.








사회인인 우리도 그렇지만

오늘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나를 되돌아보는 일기를 쓰거나 스스로를 제대로 마주하고 수고했다고 말하는 기회가 적다.




차가운 도시에서 바쁘게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기 힘들다.

아니, 어렵다.




열심히 살았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도 하나의 교육인데, 누군가가 가르쳐주어야 자신의 소중함을 알아차린다. 동기부여와 자기 계발, 마음치유가 유행하는 것도 지친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함일 것이다.




'요즘 MZ세대는 노오오력을 안 해.'라는 말과 다르게 내가 수업에서 마주하는 대학생은 누가 뭐래도 자의든 타의든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이다. 이제 대학생으로 성인이 되었으니 보상을 받나? 싶다가도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다시금 경쟁에 놓이고 방황한다. 분명, 그들의 부모님과 선생님이 대학생만 되면 '너네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말했으니까.




사회에 나간 성인은 이러한 경쟁사회가 너무나도 당연하다. 오히려, 대학교에서의 경쟁이 무슨 경쟁이냐고 비웃고 요즘 애들은 너무 편해서 문제라고 말한다. 조금만 시간을 돌려서 우리가 대학생일 때를 생각해보자. 밤을 새우면서 과제를 하고 대내외 활동을 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 대학시절 열심히 살았던 사람은 지금의 대학생이 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생이 힘들다 보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고 비난한다.




이런 현상이 한 번이라도 자신의 지난 노력을 되돌아보지 못했기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노력한 과거를 돌아보고 칭찬한 적이 없기에 다른 사람도 비난하는 것이다. 나도 과거에 남들을 비난하기 바빴다. 하지만 힘든 박사과정을 거치고 학위를 받고 나니 바뀌었다. 자신의 노력이 없고 도전을 성공한 적이 없었기에, 다른 사람의 경쟁과 노력을 비웃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사회로 뛰어들기 전인 20살 초중반의 나이에 자신의 소중함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앞으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제시하는 일종의 강제다.




하지만 과제다 보니, 본래의 의도대로 진행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수적으로 붙는다. 시간강사인 나에게 어떤 메시지도 작성하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P/F과제임에도 학생들이 나에게 좋은 글을 써야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해도 몇 명의 학생은 나에게 수고하셨습니다! 같은 메시지를 함께 보낸다. 이것이 한국인의 '정'인가?





지난 학기에 받은 메시지는 기존과 조금 달랐다. 이렇게나 길게 메시지를 적은 학생도 없었을뿐더러, 고민과 감사, 포부가 다 담긴 아름다운 글이었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왜 내 강의를 신청하게 되었는지와 신청하기 힘들었던 상황, 중간에 집중력을 놓쳐서 수업을 따라갈 수 없게 되어버렸던 자책, 그리고 남은 기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긴 말이 있었는데, 열심히 수업을 들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죄송했고 다른 수업을 또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한 학기 동안 수고한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작성하는 것


몇 년간 학생들의 메시지를 읽으면, 개중에는 내가 봐도 놀랄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똑같이 20대의 내가. 아니, 오히려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생을 가르치는 현재의 내가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찬 꼬꼬마 대학생들이 많다.




학생들이 과제를 제출하면, 모든 학생들에게 답장을 해준다. 고민을 적은 학생에게는 상담해주기도 하고, 군대에 건강히 잘 다녀오라는 말도 많이 한다. 누군가는 부끄럽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




가끔 학기가 끝나면 수업을 잘 들었다고 이메일을 보내는 학생들이 있다. 시간강사의 입장에서 한 학기가 끝나고 연락을 받거나, 진로 상담 등을 요청받으면 참 반갑고 고맙다. 적어도 한 학기 동안 강의 이외에도 해주었던 조언들이 마음을 움직여서 연락을 한 것일 테니까. 이런 작은 것이 대학 강의와 외부 강의의 차이점이다. 강사와 수강생이 아닌, 선생과 제자의 느낌이 강하다.




많은 학생들이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반대다. 학문을 익히는 대학이라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된다. 최근 인공지능의 부흥을 이끈 딥러닝도 2000년대에는 아무도 연구하지 않았으며 강의도 없었다. 내가 진행하는 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학생이 없다면, 그 강사는 대학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학생들은 강사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지루할 수 있는 전공 수업을 들어준 학생들에게 고맙다. 모든 강사가 자신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에게 고마움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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