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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캐슬 Sep 11. 2022

문이 열리면 새로운 시작이다

시작과 끝이 같으려면...

눈앞의 닫힌 문을 열면,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두근두근하다. 매일 안정적이고 똑같은 삶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의 욕구를 발산하기 위해 매일 새로움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지, 새로운 시작을 할 때는 떨림이 동반된다. 그 떨림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불확실이 가득한 두려움의 표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새시작을 알리는 환희일 수도 있다. 환희에 가득 찬 그들에게 불확실성은 두려움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경험을 가져다주는 이벤트이니까.




모두가 겪었겠지만 대학교에는 매 년 2번의 새로운 시작이 있다. 1학기와 2학기의 시작이다. 대학생들은 새로운 시작을 마주할 때마다, 규칙적으로 학교에 나와야 한다는 귀찮음과 수많은 과제를 해야 한다는 고통, 학점을 위한 정치싸움, 인간관계 등의 불확실성에 두려움을 느낀다. 대학생 커뮤니티에는 방학이 계속되기를 바라거나, 자신의 시간표가 괜찮은지 물어보거나, 학교 근처에 어떤 식당이 맛있는지 묻는 글들이 올라온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신청한 교강사가 어떤지 묻는 글이 많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강사도 학생의 마음과 같다.

학생들만큼이나 강사도 어떤 스타일의 학생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고 걱정된다. 학생들의 성향에 따라 한 학기 동안의 수업이 재미있을 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다. 학생들이 리액션을 많이 해주면, 강사도 즐겁게 강의를 할 수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다. 에너지를 전달했을 때 돌아오는 것이 있으면 티키타카처럼 강의가 즐거워진다. 강의가 즐거우면 당연히 전달하는 내용도 많다.



"강의력이 좋으면, 당연히 수업 분위기가 좋은 것 아닌가요??"

강사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아니다. 그렇지 않다.




분위기는 굉장히 중요하다.

단순히 강의력이 좋다고 수업 분위기가 좋은 것은 아니다. 같은 과목을 가르쳐도 같은 학년임에도 오전, 오후반의 느낌이 다르며, 요일에 따라 느낌도 다르다. 그래서 저학년일수록 밝고 고학년일수록 어둡다고 단정 짓기 힘들다. 학생들이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강의실의 분위기는 성적과도 관련이 있다. 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리액션이 있고 웃음이 있는, 분위기 좋은 반이 평균 점수가 높다. 같은 내용을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의 분위기와 성적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느낀다. 왜 강남 8학군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각광받는지가 자연스레 이해된다.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강의할 수가 없다

아직도 가끔씩, 힘든 날이면 그날이 떠오른다. 그 반은 공부에 관심이 없는 반이었다. 학과장님도 학생들이 공부를 잘 안 하니 충격받지 말고 수업을 듣는 소수를 위해 강의해달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과가 정해진 반이었다. 대부분이 취업이 결정되어 있거나, 군대에 가야 하거나,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한다거나, 수업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었다. 그래도 맨 앞에서 열성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3~5명 정도는 있었다.




하필이면 그날은 비가 왔다.

오전 수업의 두 번째 시간. 천둥번개도 치지 않는 적적한 빗소리. 불면증 환자들을 위한 빗소리 ASMR을 녹음해야 한다면, 오늘이 아닐까 싶었다. 한 명, 두 명 졸기 시작하더니 머리가 하나둘씩 아래로 쓰러졌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맨 앞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던 학생들도 졸고 있었다. 억지로 눈을 뜨려고 눈꺼풀을 뒤집고 자신의 뺨을 때리다가 스스르륵 고개를 숙였다. 타이밍도 안 좋게 '여러분 이해되시죠?'라고 말하면서 강의실을 바라보았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학생이 졸거나 자고 있었다.




한 공간의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

토할 것 같거나, 쓰러질 것 같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약간의 공황장애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오장육부가 몸에서 바닥을 뚫고 지하로 꺼지는 것 같았다. 강의실에는 4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으나, 누구 하나 내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한 순간에 몸속이 텅 비어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강의실의 그 누구도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모두 자거나 졸고 있었으니까. 창밖에는 자작자작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마치, 트루먼쇼의 트루먼 같았다. 누군가가 나를 실험하는 것일까? 장난일 것일까? 학생들을 깨우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멍하니 5초, 10초, 15초 얼마의 시간인지 모르겠지만 멍하니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아무 말 없이 학생들을 바라보자, 한 두 명씩 졸음에서 깨어났다. 비 오는 소리에 내 목소리가 섞여 완벽한 하모니의 ASMR을 만들어 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졸음에서 깨어난 학생들은 옆의 학생을 차례차례 깨우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다들 피곤해 보이니 쉬는 시간을 가지자'라고 말했다. 강의를 시작하고 두 번째 학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오전 수업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오전 수업은 강사와 학생 모두에게 힘들다. 대학생에게 오전 9시는 새벽 6시와도 같다. 강사도 사람인지라, 오전 9시부터 밝은 에너지로 강의를 하기엔 기력이 부족하다. 강사가 밝은 에너지를 전달하지 못하면, 소리를 크게 말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 흔히, '텐션을 올린다'라는 일본식 표현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여유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최악을 보았기에 어떤 식으로 강의를 해야 하는지 대응법을 가르쳐주었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덕에 지금은 그때와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나로 인해 분위기가 망쳐서 학생들이 수업에 관심 없게 만들지는 않도록 노력한다. 반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강사와 학생 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교강사가 권위를 가지면 반의 분위기가 딱딱해지고 성적이 좋지 못하다




분위기가 좋은 스타 강사들을 보자.

잘 가르친다는 스타 강사들 중에 재미없는 사람은 없으며, 강사가 개인적으로 어두울지는 몰라도 수업에서는 활기차다. 반의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강사라기보다는 예능인에 가깝다. 연구에 따르면, 말을 잘한 다는 것은 강의 내용이 7%밖에 되지 않는다. 오히려, 청자는 청각적인 요소인 말투(38%)나 시각적 요소인 비언어적 랭귀지, 외모, 옷 등(55%)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유명한 스타 강사들은 화려한 옷과 화장을 하고 특유의 개그감을 보유하고자 노력한다. 결국, 강의력은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다.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속한 그룹에서 어떤 사람인가?

누구나 새로운 시작은 부푼 마음으로 맞이한다. 하지만 그 끝이 어떨지는 주위의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괜히 기업에서 팀을 만들 때, 분위기 메이커를 한 명씩 넣는 것이 아니다. 실력은 떨어질지라도 모두의 에너지를 채워줄 사람은 필요하다. 수업에서는 강사가 분위기 메이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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