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타쿠가 아니라니까요?
일본의 나리타 공항은 우리나라의 인천 공항과도 같다.
서울은 인천과 김포로 나뉘는 것처럼 도쿄는 하네다와 나리타로 나뉜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인천은 광역시라는 큰 도시로 구분이 되지만 나리타는 드넓은 시골이라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디즈니 랜드/씨가 있다는 정도? 시골이다 보니 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들어가려고 해도 꽤나 돈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전에 나리타의 급변풍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나리타에 공항을 짓는 것이 좋은 결정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과 싸움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일본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정부를 상대로 하는 투쟁도 있었다. 나리타 공항 부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을 적절한 보상도 없이 강압적으로 사유지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리타 공항을 구글 지도로 보면 공항에 있어선 안될 건축물들이 중간중간 있다. 그날의 고통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이자 현재진행 중인 투쟁이다.
나리타의 이유로 일본 정부는 간사이 국제공항을 인공섬 위에 지어버렸다. 사유지 보상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반대로 태풍이 오면 안전상의 이유로 인공섬에서 연결된 다리를 봉쇄해 버려서 공항에 갇혀버리는 문제도 있다.
어쨌든지 일반적으로는 공항에서 버스나 전철을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도쿄의 서쪽으로 갈지 동쪽으로 갈지에 따라 국철인 JR 혹은 사철을 타야 한다. 흔히들 일본은 철도 민영화의 안 좋은 예시로 뽑히는데, 일본 생활을 간접경험하게 될 여행객 입장에서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전차의 사악한 가격을 마주하면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가 된다.
일본의 전차는 철저하게 속도와 구간 등의 편의성에 따라 가격을 나누어 놓았으며, 돈으로 시간을 사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익성이 없으면 회사가 도산할 테니 당연한 결과다. 나리타 공항에서 출발하는 노선은 큰 루트는 같더라도 최종 목적지는 다르게 노선을 정해두고 있다. 고객이 나뉘어 경제적 손해를 막기 위한, 기업 간의 경쟁과 상생이 함께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객은 일본의 철도 민영화의 사악한 가격을 체감하기 어렵기도 하다. 기업마다 외국인 여행객에게만 할인을 제공하거나 외국인만 구매가능한 패스 같은 것들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싸다'라는 기분이 들게 한다. 외국인 여행객에게만 주어지는 교통비 할인은 공항에서 시작하여 도심 내에서도 이어진다.
할인을 해주어도 비싼 것은 여전하지만 일본인들과 비교하여 상대적 할인을 받는다는 것에 외국인 입장에서는 대우를 받는 기분이 든다. 혹시라도 일본인의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도시를 벗어나 타 도시로 이동하려고 신칸센 노조미를 타면 된다. 비행기보다 비싼 가격에 눈물이 난다. 외국인 할인이 없는 지방도시의 사철을 타보면 일본인은 이런 곳에서 생활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나마 일본의 철도 민영화를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면, 기업마다 먹고살겠다며 다양한 디자인과 성능의 전철(전차)을 제공하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는 점일까? 21세기를 달리는 다양한 디자인과 모노레일, 증기기관차 등을 보면 자연스레 철도 오타쿠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다. 전차에 대해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특이한 디자인의 전차를 보자면 괜스레 타고 싶어 지거나 미니어처를 구매하고 싶을 정도니 말이다. 너무나도 오타쿠의 나라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