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캐슬 Sep 06. 2022

아이유도 대학생도 빌넣은 힘들다

야, 빌넣은 아무나 하냐?

얼마 전, 유튜브에서 아이유를 보았다.

과거가 떠올랐다. 대학교 축제에 고등학생의 아이유가 왔었는데, 좋은 날을 불렀었다. 그때는 내가 대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서로 함께 30대다. 이것 참. 서로서로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좋은 날이다.

아, 아이유는 나를 모르지 참.




유튜브에서 아이유는 스스로 자신의 콘서트를 티켓팅하고 있었다. 클릭을 바로 했는데, 몇 만 명이 대기하고 있는 게 말이 되냐,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라는 말을 듣노라면,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네 뺏겼어요




무릇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아이유 콘서트 광클 예약 정도는 메크로 없이도 가능하다.




대학생 시절 우리를 생각해보자.

09시 59분 59.9초에 문을 두드리면 가차 없이 내쫓던 수강신청 사이트.

사이트의 문이 나에게만 열린 줄 알았으나,

샤넬 대기자보다도 빠른 듯한 속도로 내 앞에 줄 서있는 수백 명.

10시 1분이 되자 올킬했다고 카톡을 보내는 친구.

그걸 지켜보는 나.




그때를 떠올리면, 대학 생활에서 가장 치열하고 스트레스받는 시기가 수강신청기간이었다. 언제나 수강신청은 돈을 내고도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졸업을 위해 들어야 하는 필수과목의 수강 인원은 한정적이었으며, 점수를 잘 주는 꿀 과목의 수강인원도 한정적이었다. 비싼 학비를 냈음에도 듣고 싶은 강의는 모두 선착순이었다.




누군가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했다.

맞다. 하지만.

대학생에게 행복은 수강신청 사이트에 들어가는 선착순이다.






5분도 채 안 되는 수강신청 전쟁이 끝나면, 수강신청은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한다.

MMORPG의 보스 몬스터의 1 페이즈 공략이 끝났으니 2 페이즈 공략에 들어가는 거다.




마치 유튜브에서 자신의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지 못하여 화가 난 아이유가, 주위의 스태프들에게 왜 돈이 있는데도 내 콘서트를 예매 못하는데!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원하는 강의를 신청하지 못하여, 화가 난 전국의 대학생은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교강사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시점을 바꿔서 교강사가 되어보자.

교강사 마주한 수강신청 기간도 똑같다.

힘들다.

매우.

학생들이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교강사가 뭐가 힘든데요?"

"학비를 내고 뽑아놨으면, 수업을 듣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적어도 뽑는 인원보다는 많은 학생이 수강신청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학생 : 교수님!!! 저에게 구원의 손길을!!! 교수: 너 앞에 30명이 있어.



방학이 되면, 교강사는 한 학기 동안 어떤 형식의 수업을 진행할지 준비한다. 수강인원은 교과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최대한 해당 학년의 정원에 맞게 배정받기에 교강사는 수업의 정원에 맞게 강의를 준비한다. 예를 들어 60명이 수업을 들을 예정이라면, 어떤 팀플 수업을 진행할지, 어떤 과제를 낼지 등등이다.




내 수업에서는 강의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1~2개의 게임을 진행한다. 개인적으로는 수강인원이 증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높은 학률로 내가 알고 있는 수업의 정원을 벗어나는 상황이 매우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해당 학년의 정원이 60명인 줄 알았는데, 재수강생들과 편입생, 다중 전공과 부전공, 타학과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싶다고 메일을 보낸다. 그렇게 받아주다 보면 80명을 넘기도 한다.




대학생이 교강사에게 자신을 받아달라고 보내는 이메일을 '빌넣'이라고 한다. '빌어서 넣어달라'의 줄임말이다. 간략하게 수업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보내는 학생도 있고, 에세이 작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슴을 울리는 이메일을 보내는 학생도 있다. 어쩔 때는나를 너무 추켜올려주다 못해, 도저히 내 눈으로는 부끄러워서 끝까지 읽을 수 없는 내용도 있다.




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고 어이가 없을까? 고등학생 때는 수업을 듣기 싫어서 학원을 빼먹고 학교가기를 싫어했던 그들이었다. 대학생이 되니 만난 적도 없는 사람에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받아달라고 PR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상상이나 했을까?




간혹, 교강사가 학생을 안 받아 주는 경우가 있다. 학교와 교강사간의 의견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학과 정원의 일정 비율로 다중전공이나 부전공을 허락한다. 문제는 학과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의 수가 증가했음에도 교강사는 아무것도 전달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인원이 몇 명 증가했는지 알려주지도 않을뿐더러, 몇 명이 필수적으로 해당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순수하게 수강 신청기간에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왜 수강신청을 많이 하는 거지? 연락이 왜 이렇게 많이 오는 거지?'

교강사는 원래 60명 만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수십 명의 학생이 졸업을 위해 해당 강의를 꼭 들어야 한다는 난감한 연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미리 학교 측에서 말해줬더라면 교강사도 당황하진 않았을 텐데...




어떤 교강사는 60명에게 최적화된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과제나 팀플 진행에 무리가 있을 거라 판단하고 증원을 받지 않는다. 어떤 교강사는 관리가 힘들고 강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며 거부한다. 어떤 교강사는 물리적으로 실습실이 좁아서 거부한다. 같은 과목의 다른 교강사의 수업은 신청 인원이 적은데 내 강의를 증원해달라고 연락이 온다면? 증원해줄 수 없다. 교강사 관리를 위해 학교에서 증원해주지 않는다.




이처럼 교강사에게도 학생을 받을 수 없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수강신청기간에 교강사에게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잘 안 오는 이유는 위와 같은 상황 때문이다. 교강사도 사람이라 구구절절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진다. 하지만 증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많기에 답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상황이 되면,

학생 입장에서는 내 돈 내고 내가 왜 교강사한테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빌어야 하지?

교강사입장에서는 왜 학교에서 말한 인원보다 훨씬 많은 학생이 신청하는 거지? 얘기가 다른데?

로 귀결된다.




나는 수십 명의 학생에게 빌넣 연락이 오면 모두 받아준다. 내가 명강사라서 학생들을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거절하기에는 내가 학창 시절 듣지 못했던 수많은 수업이 기억나기에 그럴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1명 정도는 더 받지 뭐...라고 생각해서 한 명씩 받다 보니 20명 30명 늘어난 경우가 맞다.






이번 학기 학생들에게 증원 요청을 받은 이메일만 40통이 넘는다. 작년 이맘때 약 60통 가까운 이메일을 받았던걸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빌넣 메일들에게 답장을 해주다 보면 '이번 학기 수업을 열심히 듣겠습니다!'라는 답장을 받기도 한다. 학생은 비싼 학비를 냈기에, 교강사는 가능하다면 그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증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빌넣 메일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사실이다.



학점을 잘 주는 교강사의 강의를 수십만 원의 돈을 주고 사고파는 일도 번번이 보인다.



그렇게 수강신청기간은 학생도 교강사도 승자는 없다.

서로 씁쓸함만을 가진채 새 학기를 시작한다.

아마, 자신의 콘서트를 티켓팅 하던 아이유도 똑같은 감정이지 않았을까?

콘서트 티켓팅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팬들을 콘서트에 초대하지 못하는 마음.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날의 당신은 피터팬인가요? 웬디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