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Camouflage
Trend: Camouflage
꼭꼭 숨어라 카무플라주 보일라
한 시즌 반짝하고 저무는 트렌드가 있는 반면,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으며 시간의 잔혹한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는 트렌드도 있다. 카무플라주(Camouflage)가 그렇다.
이 특별한 패턴의 귀환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리테일 데이터 분석 회사인 에디티드(Edited)의 보고서에 따르면 카무 팬츠의 수요가 전년 대비 12% 증가했으며, 패션 문화 플랫폼 컬티드(culted)는 최근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 ‘카무플라주 아웃핏’이란 키워드로 검색된 횟수가 평소보다 약 2995% 상승했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이 화제의 패턴의 기원은 어디서 부터 일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카무플라주는 본래 군용 의류에 쓰이던 패턴이다. 굳이 시작점을 짚어보자면 1929년,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텔로 미메티코(Telo Mimetico) 무늬가 그 시초다. 개발 초기엔 의복이 아닌 텐트와 우의에만 쓰였으나 1942년부터는 이탈리아 낙하산병의 군복에도 사용하게 된다. 이후 세계적으로 점점 수요가 늘어갔고 90년대 초까지의 군복은 대부분 이 패턴이다. 리뉴얼 전 우리나라 군복에서 목격되었던 개구리 무늬의 프로토타입이라 보면 된다.
그러나 텔로 미메티코가 등장하기 이전엔 나라별로 군복의 색깔이 확연히 달랐다. 레드 코트라 불리는 근대 영국군의 붉은 군복이나 프랑스군의 남색 전투복 등 대부분이 눈에 잘 띄는 원색 위주였다. 이유는 당시 전쟁에 사용되던 무기 때문이었다. 칼과 활, 사정거리와 연사력이 떨어지는 전장식 소총 등이 전부였기에 근거리 전투가 필수였으며 때문에 피아식별이 확실한 원색의 군복이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19세기 중후반에 접어들며 무기는 점점 진화했고,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사정거리가 길고 폭발력이 강한 현대적인 화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당연히 그동안의 화려한 원색 군복은 이러한 변화에 적합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군의 표적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대대적인 개편이 시급해진 군복. 이때부터 군복의 초점은 위장력에 집중된다.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의 존재를 엄격히 숨겨 원거리 전투에서의 사상자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곧 자연의 색을 모방하는 것으로 실현되었다. 마치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물의 보호색을 군복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무플라주 패턴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1970년엔 미군의 육군 장교인 오닐(Timothy O'Neill)이 사각형의 작은 픽셀로 구성된 디지털 카무플라주 패턴을 개발하며 또 한 번의 변혁을 일으킨다. 초기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각형의 점이 오히려 발각의 위험을 더 커지게 만들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인간이 눈은 이를 부자연스러운 무늬가 아닌 뭉개진 형태로 인식한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실제로 비슷한 색상의 얼룩무늬와 디지털 카무플라주를 비교했을 때 후자의 성능이 더 우수하다는 것이 군사기관의 결론이다. 덕분에 캐나다군은 이 디지털 패턴을 세계 최초로 모든 부대에 적용했으며, 디자인도 단순하고 원단에 인쇄에도 용이하다는 강점에 힘입어 2000년대 이후엔 전 세계에 널리 보급되었다.
패션은 종종 위장을 영감으로 사용한다. 얼핏 보면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안엔 나름의 패턴이 있으며 나아가 다양한 컬러로 변형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원래는 철저히 숨기기 위해 사용되던 카무플라주가 현대 패션에선 누구보다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
그렇다면 올해의 카무플라주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최근 컬렉션에 등장한 카무플라주 패션을 함께 살펴보며 추리해 보자.
우선 카무 패턴의 제왕, 퍼렐(Pharrell Williams)의 Louis Vuitton이다. 그는 데뷔 컬렉션인 2024 SS에서 브랜드의 상징인 다미에(Damier) 패턴과 카무플라주를 결합시킨 다무플라주(Damouflage)를 선보이며 승부를 걸었다. 하우스의 상징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부드럽게 녹여낸 이 시도에 감탄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Roberto Cavalli의 2024 리조트 컬렉션에서는 보다 진화된 카무플라주를 만나볼 수 있다. 그린과 카키 위주의 전체적인 색채 구성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대신 자연물의 형태 자체를 프린트하거나, 소재의 차이로 색감의 차별화를 구현해 낸 것이 포인트. 덕분에 한결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카무플라주 룩이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Dior의 카무플라주는 어떤가. 서로 다른 초록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Dior만이 추구하는 낭만에 어느새 가까워진다. 특히 올해 카무플라주 패션의 특징이기도 한 오버사이즈 핏과 적절히 맞물린 재킷은 카무 패턴의 강렬함을 산뜻하게 중화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이외에도 GUCCI, Andersson Bell, BURBERRY의 최신 룩들에서도 카무플라주의 다양한 변신을 발견할 수 있다. GUCCI는 디테일과 청량한 민트 컬러로 힘을 실었고, Andersson Bell은 파격적인 색채와 포켓으로 나름대로의 해석을 더했으며, BURBERRY는 계절감과 어우러지는 부드럽고 포근한 색감을 가미했다. 대체 이 다재다능한 패턴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카무플라주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무채색은 물론 채도와 명도에 상관없이 어떤 색과도 잘 어우러지는 게 바로 이 패턴의 최고의 장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무 팬츠는 올 가을 반드시 구비해 두어야 하는 아이템이다. 어떤 상의를 매칭해도 멋스러운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게다가 어떤 슈즈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다. 카무 패턴 특유의 파워풀함과 대비되는 페미닌한 라인의 슈즈를 선택한다면 극과 극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무드가 새록새록 피어날 것이다. 쿨하고 섹시한 이미지가 공존하는 그런 진취적인 느낌 말이다.
스니커즈나 부츠 역시 카무 패턴 본래의 매력을 살려주는 좋은 선택이다. 편해 보이면서도 뭔가 애슬레저 룩과는 또 다른 스포티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면 이만한 게 없다. 특히 스니커즈엔 와이드 핏의 팬츠를 착용하여 극도의 트렌디함을 만끽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카무 패턴의 꽃은 바로 재킷이 되었을 때다. 무심히 걸친 카무 재킷에서 묻어나는 은은한 무게감은 물론 평범한 워크 재킷과는 다른 다채로운 컬러 패턴 덕에 화려함도 함께 챙겨갈 수 있으니. 특히 클래식한 착장에 입혀진 카무 재킷은 그 자체로 포인트가 되어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게 해 줄 것. 만약 당신이 가을 재킷 구매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반드시 고려해 보야할 아이템이다.
카무플라주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이상적인 관계와 닮아있다. 자신만의 색을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만남에 있어 결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어느새 한데 모여 궁극의 균형을 이뤄낸다. 색과 색 사이의 배려와 존중은 그들을 마침내 아름다운 무늬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카무플라주의 힘, 완벽한 조화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