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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기억을 입다

Brand LAB: Simone Rocha


어린 날의 기억을 입다

Brand LAB: Simone Rocha






과거와 현재, 거북이와 토끼, 자전거 보관소, 교장 선생님, 그리고 학창 시절의 향수.

알 수 없는 단어를 늘어놓은 것 같지만, 시몬 로샤(Simone Rocha)의 어린 시절 기억을 짚어낸 흔적이다.


1.jpg Simone Rocha FW25 ⓒdazeddigital.com


그리고 시몬 로샤가 새롭게 그려내는 낭만적인 이솝우화. FW25 시즌은 ‘토끼와 거북이’에서 영감을 받아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해 온 자신의 여정을 그려낸 컬렉션이다. 패션을 모국어처럼 익힌 영국의 한 소녀가 걸어온 남다른 길, 그녀의 이야기가 되살아나는 순간을 담아냈다.


2.jpg Simone Rocha FW25 ⓒi-d.co


에디터를 포함해 쇼를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한 마리의 토끼. 이는 곧 어렸을 적 저마다 품고 있던 인형 속에 깃든 순수함을 의미하는 듯했다. 또한, 관객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현듯 꺼내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이자, 동시에 시몬 로샤가 집요하게 탐구해온 여성성의 양가성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보호받아야 할 순수함이자, 두려움과 불안을 품은 불완전한 존재였던 어린 시절의 우리.


이번 컬렉션을 통해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의 ‘나’과 마주하게 된다.




디자이너 딸이라는 꼬리표


그녀의 유년 시절은 어땠을까. 시몬 로샤에게 패션이란 출생과 동시에 새겨진 운명과 같았다. 그 배경에는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 존 로샤(John Rocha)가 있다. 홍콩 출신이지만 더블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1993년 영국 패션 어워드에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된 그는, 딸에게 첫 번째 스승이자 길잡이였다.


4.jpg ⓒ@simonerocha_ (왼쪽부터 부모님, 딸, 시몬 로샤와 남편)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놀 적, 11살 시몬 로샤의 놀이터는 아버지의 아틀리에였다. 작디 작은 고사리 손으로 코바늘 뜨기와 바늘 다루는 법과 같은 손재주를 자연스레 익히게 되었다. 14살이 되자, 그녀는 아버지 쇼를 위한 양말 제작부터 패턴 자르기, 재봉까지 직접 맡으며 어린 나이에 이미 작은 조수의 역할을 해냈다. 바늘과 천 위에 쌓인 시간들은 훗날 그녀의 컬렉션 곳곳에 숨어 있는 정교한 디테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5.jpg ⓒwmagazine.com


이미 디자이너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탓일까.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아틀리에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독창적인 브랜드를 세웠다. 더블린 National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학사 학위를 마친 후, 2010년 9월 런던 패션 위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2014년 하퍼스 바자에서 올해의 젊은 디자이너, 2016년 영국 패션 어워드에서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선정되며 단 한 번의 브레이크도 없이 주목을 받아왔다.


6.jpg Simone Rocha ⓒharpersbazaar.com


“저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심이 많아요. 컬렉션에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자연스럽게 투영할 수 있어 정말 좋아요.” - 시몬 로샤





시몬 로샤가 일상에 낭만을 더하는 법


패션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영감의 원천이 된 시몬 로샤. 한없이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디자인, 이것이 시몬 로샤가 가진 힘이다. 인터뷰를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고 밝힌 그녀. 닿을 듯 말듯한 미지의 로맨티시즘이 곧 시몬 로샤의 정체성이자 그녀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세계다.


12.jpg ©culturedmag


시몬 로샤에게 이제 막 시작하려는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무엇보다도 정체성이 뚜렷해야 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 패션은 직행열차가 아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다. 밖에서 보기에는 다 같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다양한 일을 하는 데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고 대답했다.


13.jpg FW23 ⓒtag-walk.com


오늘날 세상에 당당하게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는 것 자체로, 시몬 로샤는 단순히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여성들에게 강인한 태도를 제안한다. 시몬 로샤가 그리는 여성은 연약함과 강인함, 고전적 낭만과 현대적 실험을 동시에 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를 써내려간다. 그녀가 구축한 세계에서 여성스러움은 제약이 아니라 가능성이며,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힘이다.


14.jpg FW23 ⓒsimonerocha.com


시그니처 요소인 리본, 옅은 파스텔 톤. 러플과 볼륨이 조화를 이루어 한 송이의 꽃을 연상케 하는 실루엣. 우리가 바로 떠올리는 시몬 로샤는 이러한 모습이지 않은가. 그녀가 그토록 강조하는 브랜드의 정체성, 시몬 로샤의 신념이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시몬 로샤는 늘 “어떻게 하면 남성복에도 여성복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담아낼 수 있을까?”를 연구해 왔다. 남성복에 대한 틀에 박힌 고정 관념을 깨고, 장난기와 낭만을 적당한 비율로 녹여내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온 그녀. 올해도 성인 남성의 옷장에 뜻밖의 로맨스를 불어넣을 채비를 마쳤다.


7.jpg ⓒ@simonerocha_


낭만과 장난의 균형을 절묘하게 다루는 시몬 로샤만의 솜씨. 이 절묘함 또한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진주가 수놓아진 셔츠와 플리츠 팬츠는 남학생의 교복을, 자전거 자물쇠를 닮은 벨트는 개구진 소년을 떠올리게 만든다.


8.jpg FW25 토끼 백과 거북이 백 ⓒsimonerocha.com


여성복 라인은 토끼가 시선을 사로잡은 반면 남성복 라인에서는 단단한 거북이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토끼가 순간의 속도를 상징했다면 거북이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는 끈기의 은유다. 남성 컬렉션이 상대적으로 여성 컬렉션에 비해 주목받지 않지만, 시몬 로샤는 꾸준하게 남성복 또한 다듬으며 자신만의 서사를 풀어내고 있다.




매혹적이고 섬뜩한 로맨스


시몬 로샤가 부드럽고 사랑스럽기만 한 줄 알았다면 완벽한 오산. 시몬 로샤는 꾸준히 다크 로맨티시즘의 영역 또한 벗어나지 않았다. 브랜드 특유의 로맨틱한 이미지 때문에 모두가 ‘블랙’을 지워버리곤 한다. 하지만 시몬 로샤는 은밀하게 ‘블랙’에 판타지를 부여해왔다. 어두움 속에 핀 꽃, 우아하고도 고딕한 펑크와 같이 자신만의 언어로.


9.jpg FW24 ⓒtag-walk.com


시몬 로샤는 또 꾸준히 본인만의 견고한 미학을 유지하고 있다. 산뜻한 러플과 튤, 시어 소재 속에서도 블랙은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단단함과 여성스러움을 동시에 강조한다. FW24에서 보여준 다크 로맨티시즘의 연장선에서, FW25 역시 장난스러움과 낭만 속에 숨은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


15.jpg FW24 ⓒtag-walk.com


리본은 더 이상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때로는 목을 부드럽게 조이는 속박이었고 때로는 코트의 단단한 라인을 풀어내는 열쇠였다. FW24에서 무게를 지탱하던 코르셋과 러플은 FW25에는 이솝우화의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조금 느슨해졌다.


16.jpg FW25 Backstage ⓒnovembre.global


그녀에게 있어 옷의 가치는 아름다움, 여성성, 실용성이다. 테크니컬과 여성스러움이 가득한 옷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옷장을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단단함과 부드러움, 장난기와 낭만의 대비를 말하는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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