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세이 작가가 말하는, 연애할 때 밀당이 필요 없는 이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tvN, 2020)은 ‘불가능함’이 없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윤세리(손예진 분)와 리정혁(현빈 분)은 ‘남과 북’이라는 분단의 현실, 즉 사랑해선 안 되는 환경에 놓였지만 결국 모든 난관을 헤치고 사랑을 이어간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완벽한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둘은 옥신각신하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좋아하고 아끼고 헌신한다. 연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이별의 고통을 감내하고 상대를 지키려 목숨을 걸기도 한다. 이런 사랑은 현실에도 얼마든지 많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하면, 현실에 이런 감동적인 사랑만 있을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갑과 을의 연애, 누가 더 행복할까
사람들은 상처입지 않으려고 ‘밀고 당기며’ 연애를 한다. 그리고 이 흥미진진한 연애게임에서 이른바 ‘밀당’은 전략과 전술에 따라,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이 나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긴 사람은 연애 전반에 있어 ‘갑’이 되고, 진 사람은 ‘을’이 된다. 때때로 이 관계는 뒤바뀔 수 있지만 주도권이 정해지면 바뀌기 어렵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을’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랑에 올인하는 을의 연애와 적당히 나를 지키는 갑의 연애. 그 두 가지 중 어떤 방식이 옳다고 할 수 없다. 둘 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갑과 을의 연애 중 누가 더 행복한지. 노희경 작가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따지면 나를 지키려고 재고 따지는 ‘갑’의 연애보다 내 모든 것을 내어주고 헌신하는 ‘을’의 연애가 훨씬 더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 번의 사랑이 끝나면, 나를 둘러싼 세상 전부가 모두 무너져 내리는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설령 내가 ‘갑’이었다 해도 똑같다. 이별의 슬픔은 무게가 조금 다를 뿐 통증은 비슷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을이거나 갑이거나 관계없이 사랑이 힘들다.
언젠가 반드시 잃게 되는 것이 사랑
사랑은 한 사람을 둘러싼 세상 전체를 변화시킨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은 마냥 행복할지도 모르겠으나 다양하게 솟아오르는 감정들은 사람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고 마음속 깊은 곳에 두려움을 심어준다. 갑과 을 모두 사랑이 힘든 것은, 평소 직면하지 않았던 내면의 공포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심연의 공포는 인간의 불안과 맞닿아있다. 언젠가는 이 벅찬 사랑에도 끝이 있을 것이기에 ‘직진’하고 싶은 본능과 ‘멈추고 싶은’ 방어 사이에서 싸워야 한다. 싸우다 지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면 그 고뇌 또한 쓰라리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안전한 중도하차를 선언할 것인가, 아니면 공포감에 짓눌리더라도 용감하게 사랑의 아픔을 감내할 것인가.
사랑에는 논리가 없어서 쉽게 균열이 온다. 그러니까 사랑은 애초에 분석이 불가능한 것이다. ‘내가 을이다, 아니 갑이다’하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누기에 사랑의 변수는 너무도 많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는 그냥 그대로 인정함이 현명한 것 아닐까. 그렇기에 어떤 헤어짐으로 귀결되는 균열에 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고, 상대방 또한 그렇다. 기본적으로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다. 그걸 평생에 걸쳐 반복함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사람은 사랑에 논리가 없음을 깨닫고 ‘이해’를 시작한다. 다툼이 있을 때, 연인들은 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대전제도 잘못됐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나를 이해 못 하겠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이런 모습에 빗대어 보면, 상대를 사랑하는 감정이란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다. 각자가 체득한 이상형을 덧씌운 것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해하려는 노력만큼은 분명히 사랑이다. 내 옆의 사람이 나를 온전히 이해하길 바라지 말고 ‘그 사람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자. 이해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간극을 좁힐 수 있다.
삶이 지속되는 한, 사랑은 멈추지 않아
늘 행복할 수는 없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은 사랑으로 인해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그리고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그 사랑을 놓아버릴 권리도 있다. 갑이라도, 을이라도... 그런 규정에 상관없이! 그러니까, 당신은 있는 힘껏 행복해질 책임과 의무도 가지고 있다. 삶이 지속되면,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상처받기 싫다면 은둔해라. 그럴 수 없다면 멋지게 나아가야 한다. “너무 사랑하지 말라.”는 충고는 그 사랑도 아픔도 뼈에 새길만큼 체험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연인들이여, 사랑하자. 두려움도 아픔도 없는 둘만의 세상을 향하여. 한 톨의 틈도 남기지 말고, 살아있을 때 사랑하자. 산천초목이 질투하는 운명의 주인공이 되더라도.
- 이청안 산문집,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중에서-
사랑은 우리가 지닌 가장 여린 마음이다. 그래서 있는 힘껏 지키지 않으면 산산이 흩어져 먼지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혹여 먼지가 되더라도, 나는 당신의 ‘사랑’이 늘 행복하기를 바란다. 불행을 껴안고 살기에는 우리들의 인생이 무척이나 짧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두려움의 허물을 벗고 당신 생에 마치 기적처럼 찾아온 그 사람에게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수많은 난관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함께 ‘공포 체험’을 해 줄 그 사람과 함께. 크고 작은 ‘해피 엔딩’의 순간을 기록해나갈 당신의 드라마를 응원한다.
[ 이 글은 MG새마을금고 사보 2021년 5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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