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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Apr 19. 2024

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제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에 결혼한 오빠는 그다음 해에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이제 절은 곧잘 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벌써 그 녀석도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된다. 아버지의 손주 녀석은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그 녀석에 할아버지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건 수목장의 나무뿐이다.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가자~" 하고는 웬 나무 앞에서 절하고 인사하고 하니 조카가 어릴 적에는 우리 아빠를 나무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아이가 떼를 쓰는 건 당연하다. 특히나 동생과 네 살이나 차이가 나다 보니 오랫동안 가족들의 보살핌과 사랑을 독점하며 왕으로 군림했던 시절이 꽤 길었던 터라 훈육을 받는 나이가 되고 동생이 생겼어도 아직도 자기 뜻대로 되는 줄 착각할 때가 많다. 일은 그렇게 터졌다.


자기가 제일 먼저 절하겠다고 땡깡을 피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절도 하지 않겠다며 제사상 앞에 드러누워버린 것이다. 평소에는 친구 같이 놀아주는 오빠도 도저히 아이의 생떼를 받아 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둘이서 전쟁 같은 기싸움을 하다 보니 아이는 아빠가 왜 화가 난 지 잊고 아빠가 를 내는 것에 분을 삭히지 못하고 씩씩 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고작 제3자인 고모라 평소에 훈육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오빠도 답지 않게 감정이 격해져 있어서 내가 방에 따라 들어갔다. "아빠가 나나(애착인형)를 던졌어..!" 하며 우는 조카 등을 쓸어내리며 "그랬구나, 아빠가 나나를 던져서 속상했어?/ 응.../ 아빠가 왜 화가 났을까? /... / 아빠가 많이 속상해서 그래. 오늘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는 날이잖아. 할아버지가 누구야? 고모 아빠고 아빠의 아빠지? 아빠한테 내 새끼 예쁘게 잘 크고 있어요~ 보여주고 싶은데 할아버지한테 인사 안 한다고 하니까 아빠가 속상하지." 하고 말하다가 내가 눈물이 나고 말았다.


나도 친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엄마랑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지금 우리 집이랑 똑같다. 할아버지의 정을 받은 적이 없어서 사실 그분께 그 어떤 감정도 없다. 그런데 우리 조카가 우리 아빠를 모른다는 건 좀 속상하다. 아빠는 정말 다정한 사람이었다. 우리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우리 조카의 베프는 우리 엄마가 아니라 분명 아빠였을 거다.


우리 아빠는 꿈이 어린이집 원장이라고 했다. 사실 아빠한테 들은 적은 없고 조카가 태어난 후 엄마한테서 들은 얘기다. 아빠가 나중에 은퇴하면 어린이집 원장하고 싶다고 그랬었단다. 그래서 우리 사촌들이 자기들 아빠보다도 우리 아빠를 더 좋아했던 거다.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엄마는 '너네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진짜 잘 놀아줬을 텐데' 하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게.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엄중한 제사 분위기를 아이가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하하하 맑게 웃었을지 모르는 아이가  본 적도 없는 할아버지 때문에 그 작은 떼를 못쓰게 해야 하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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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3월 11일, 4월 중순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날이 좋았다. 8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날도 봄볕이 따사로운 화창한 날이었다. 준비도 못하고 급하게 떠나보내고 모실 곳이 없어 유골함을 들고 돌아왔던 집은 사계절 내내 빛이 잘 들지 않는 연립주택이었다. 그 밝고 따사로운 날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 방이 내 마음 같았다. 사는 동안 그 공간에서 낸 것도, 돌아가시고서도 아빠를 거기에 둬야하는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여전히 아빠의 냄새가 배어있는 이불 위에서 뜨거운 가마의 열기가 남은 유골함을 붙들고 그게 마치 아버지의 마지막 온기인 것처럼 애타게 끌어안고 있었다. 내가 이 맘쯤 봄의 스함이 반갑다가도 서글픈 건 그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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