滿足 물이 발을 적신다. 물이 발까지 차오른다. 마음이 흡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한 것
이번엔 지리산 연곡사로 향했다. 절에 도착해 편안해지는 마음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눈물이 자꾸 나오려고 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몇 번 삼켜냈다. 피난처로 온 마음의 안도도 아니고, 자연이나 종료에 대한 경외감도 아니었다. 휴식 중인 마음속 대체 무엇이 서럽다 속에서 외쳐대는지 스스로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폐 끼치지 않으며 오롯이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템플스테이가 좋아서 내내 묵언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 묵언은 둘째 날 저녁 공양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보살님이 말을 건네면서 중단되었다.
"방의 창에 풍경이 좋지요? 꽃이 필 때라 하루하루 점점 더 예뻐요. 2박, 3박 하시는 분들이 오시면 내가 그 방을 내어드리거든요."
보살님이 내 눈을 보고 입을 떼던 그 순간에는 타인과의 말 섞음이 불편했는데 사려 깊은 마음을 건네받고는 웃으며 "네 예뻐요." 조용히 답을 하고 공양간을 나섰다. 그리고는 절 마당에서 해가 떨어지는 지리산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힘들어하는 마음을 견디기 어려워하면서도 속으로는 고작 이런 일로 삶을 버거워하거나 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삶을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되뇌면서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했던가. 내 감정을 묻어버리고 무시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연곡사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내가 묵을 방을 안내해 주셨는데 방안에 작은 테이블 위에 이전 손님이 남긴 편지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자신 스스로에게 보내는 다짐 같은 편지였다. 정갈한 서체로 덤덤하게 쓰여있었지만 거기엔 기구한 사연이 담겨있었다. '아아... 나는 이런 삶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 편지가 '이 삶을 살아볼 수 있겠는가. 아직 자네는 진정으로 힘든 삶을 겪어보지도 못했노라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라'라고 나약한 나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든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밖으로 쏟아내지도 못한 채 울컥거렸던 것일 테지.
내가 누군가에게 힘들다는 마음을 털어놓을 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와 같은 말이 맞는 말임을 알면서도 무심한 그 말에 외로움을 느꼈던 것을, 방 하나 내어주는 것에 담긴 보살님의 작은 배려가 나를 끝내 울리고 말았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고, 그 누가 뭐라 하든 내 고통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욕심이 많은 까닭에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이것이 나의 고집苦集이구나.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 아니라 다름 아닌 내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또한 서글퍼져 오랜 시간 울고 말았다. 만족하는 삶이란 그런 거구나.
더 이상 울지 말아요. 더 이상 불평하지 말아요. 이것은 마음속 마지막 품은 시입니다.
불평을 멈출 때, 당신의 영혼은 다시 채워질 것입니다. 눈물을 멈출 때, 당신의 눈은 다시 맑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