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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Dec 17. 2023

수고했어 올해도.

이보다 더 잘 살긴 쉽지 않았을 거야. 고마웠고 사랑한다.

12월의 첫날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잘 살아보고 싶었는데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도망치듯이 선택한 짧은 도피였다. 그래도 그 안에서 마음의 평온은 잠시나마 얻고 나니 올해도 이제 한 달 남았으니 마지막 한 달은 잘 살아보자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올해를 끝낼 수 있다면 2023년 한 해를 잘 산 것처럼 미화되지 않을까. 인생사 결과론적인 것.


그리고 현재의 번뇌와 고통 말고 내가 얻은 새로운 것들에게 대해서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올 한 해도 열심히 살았고 잘 살았다는 2023년 나만의 정산'


1. 체력이 좋아졌다.

작년엔 디스크가 흘러나와 고생을 많이 했다.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물론 지금도 함...) 안 좋은 허리가 좋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에 급격하게 악화된 것이 멘탈을 많이 약하게 만들었었다. 그걸 극복하고 올해는 작년에 엄두도 못 내던 것들을 해낸 한 해였다.

- 베트남 여행 : 해외출장 일을 그만둔 이후 처음 비행기를 탔다. 하루 여행 3~4시간씩만 겨우겨우 버틸 수 있었던 여행이었으나 친구의 배려로 나름대로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끝까지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 독일 출장 : 13시간의 비행시간만으로도 겁이 나 출장 전 거의 주 2~3회 재활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나갔던 출장. 하루에 만보 걷기도 힘들 던 내가 첫날부터 2.3만보를 걷고 평균 1.5만보씩 걸으며 최대치의 체력 소진과 한계를 경험한 10일간의 여정. 너무 힘들어서 눈물도 쏟았으나 베트남 여행보다 컨디션을 유지하는 스스로에게 놀랐었다. 인생의 목표치에 오르는 계단을 한 칸 올라간 느낌이었다.

- 산사를 향한 500m 등산 : 사실 봄에 올랐던 남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금선사에서의 템플스테이를 결심하려면 그 양이 얼마던 '계단과 산'이라는 장애물과 '좌식'을 감내할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작년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 이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2.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했다.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때나 가족 여행을 다녔는데 기억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5학년 때 가족여행을 마지막으로 그 이후로는 형편 때문에 다 같이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사회생활 하면서 가족단위로 매년 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 티브이 프로그램 앞에서 "엄마, 저거 내가 해봤는데, 저기 내가 가봤는데" 하면서 설명하는 내 꼴도 좀 웃겼다. 슬프게도 엄마 무릎이 많이 안 좋아서 앞으로 엄마랑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거대한 효도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엄마와의 추억을 쌓는 일이 필요했다.

- 첫 여행, 강릉 : 여름휴가를 엄마와 강릉에 다녀왔다. 손주의 재롱 앞이 아니라 순수하게 즐거워서 웃는 엄마 얼굴을 보면서 행복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환하게 웃는 엄마 얼굴을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 하늘공원 나들이 : 집이 코앞인데 나가지를 않아서 그 동네 이사한 지 7년 만에 엄마 데리고 하늘공원 억새축제를 다녀왔다. 아픈 무릎 운동시킨다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느라 엄마가 고생을 좀 했지만 나도 엄마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기분 냈냐면 동네 마트에서 할인해도 안 사주는 아이스크림을 거기서 무려 2500원에 파는데도 사줬다.


3. 회사를 아직도 다니고 있다.

때려치우는 건 코 앞인 거 같지만, 올해 때려치우지 않고 버텼다. 마인드컨트롤이 잘 안 되었지만 그래도 여태 버텨서 지금이 백수가 아닌 것에 스스로 대견하다. 이 프로젝트를 끝낼 때까지 버틸 수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이제 곧이다.


4. 생각했던 것들을 실행했다.

- 브런지 : 꾸준히 하지는 못했지만 글쓰기를 시작했다. 마음을 써 내려가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 꽃꽂이 : 2년 동안 생각만 했던 플라워클래스를 원데이로 들었다. 그렇게 소소하게 꽃생활을 시작했다.

- 템플스테이 : 절벽 끝에서나 선택하는 거라고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해보고야 알았다. 나 혼자서 오롯이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휴식 방법을 찾았다는 걸.


수고했다. 2023년. 정말로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한 해였다. 가장 많은 것들을 시도했고 도전했고 해냈다. 하나도 헛되지 않았다. 고생했다. 고맙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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