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라는 감정에 집중해 본다. 우리는 좋아하는 게 많다고 해도 생각보다 '좋은 기분'을 일상에서 자주 느끼지는 못한다. 언젠가부터 내 하루의 목표는 '오늘도 즐겁게'가 아닌 '오늘은 무사히'가 된 지 오래다. 나를 편안하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행위에 집중해 보자는 의미에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올해 봄 어느 날 촉촉히 내리던 봄비
9.비 맞은 풀내음 맡는 것을 좋아한다.
겨울을 독촉하는 비가 온다.
토독토독. 잎사귀가 비에 맞아 풀향기를 내뿜는다. 마치 커다란 숲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다.코로촉촉하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귀로 잎사귀와 우산에 떨어지는 얕은 빗방울 소리를 듣는다. 비 오는 날의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
숲 속에 있는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호흡을 반복하면 내 안의 독소가 빠지고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평소에는 숨을 굉장히 얕게 쉬고 가끔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있을 때가 있는데 이 때문인지 종종 가슴의 답답증을 느낄 때가 있다. 이 때문에 비 오는 날의 외출은 사실은 싫어하는 것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젖은 풀내음을 즐기러 가끔은 우산을 들고 동네를 산책한다.체온보다 낮아 상쾌하게 느껴지는, 수분과 풀향을 가득 머금은 공기가 코를 지나 폐를 향한다. 평소에는 긴장되어 있는 흉곽을 가득 열어 공기를 가득 담아본다.천천히 걸으며 의식적으로 호흡을 반복하다 보면 가슴이 조금 이완되는 기분이 든다.
사실 과학적으로는 풀냄새보다는 흙에 있는 미생물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내는 물질에 의한 냄새라고 한다. 그렇게 환경이 스스로 정화작용을 하는 동안 자연에 속한 나도 그 안에서 자정작용의 기쁨을 즐기는 것 같다.
산책을 하다가 낮은 조경수에 다가가 잎사귀에 동글동글 맺힌 맑은 구슬을 구경해 본다. 비와 바람에 흔들리며 구슬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뭉쳤다가 흩어지고, 튀는 것을 보는 일도 재미지다. 어린아이처럼 우산의 빗방울을 잎사귀에 더 떨어트리며 변화하는 모습을 감상한다.
어느 날은 일하는 도중에 비가 왔다. '이런, 우산이 없는데.' 걱정하며 일을 하다보니 퇴근 시간이되어 나갔는데 그 사이에 비가 그친 그런 날도 있다. 퇴근 후 자유로워진 시간에 흠뻑 젖은 풀내음을 즐기는, 더할 나위 없는 힐링의 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