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튼 야경 (스무한 번째 날)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 50> 11월 9일


어젯밤 야간작업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침식사를 위한 계란프라이도 할 수 없을 만큼 하루도 시작하기 전에 피로함이 밀려왔다. 간단한 아침준비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식사로 A&W에 가고 싶었다. 잘 구워진 토스트, 계란프라이, 소시지, 그리고 커피 한잔이면 힘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팀홀튼이었다. 그 많던 A&W가 왜 우리가 가야 하는 길목(자재 사러 Lona 가는 길)에는 하나도 없는 건지...


팀홀튼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이런 인생의 진리는 공사현장에서도 정답이었다.

내다 팔았는지, 구워 먹었는지, 에드먼튼 집 클로젯에는 문이 없다. 도대체 멀쩡한 문은 왜 때넸을까? 또 그 무거운 문짝은 어디로 가져가 걸까?

예전 같았으면 그냥 나무판자 같았던 문이 이렇게 종류도 많고 가격도 비싼지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모든 문들이 사이즈도 다르다니 분명 인테리어 공사하시는 분, 목수분들은 똑똑한 분이 셔야 할 것 같다.


로나에서 우리에게 맞는 문을 찾지 못했다. 에드먼튼을 횡단해서 우리는 또 다른 마트로 이동 중이다.

"이곳에서는 제발 문을 살 수 있기를... 이번 주에 모든 일들이 다 마무리될 수 있기를..."


머리를 흔들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본다.


"우린 할 수 있다!!!"




공사시작!

문을 샀다! 문을 사서 그냥 달면 되는 줄 알았더니 모든 문들이 프라임 페인트만 칠해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문을 달기 전 페인트 칠을 해줘야 한다. 다시 페인트 칠을 해야 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 거리지만 출발이 좋다!

점심준비를 위한 장을 보러 나간 사이 장인어른과 배짱이 팀은 클로젯 사이즈에 맞게 문을 재단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공사 준비




이제는 정말 아빠의 귀국준비를 해야 한다. 시댁 부모님을 위한 오메가 3도 사야 하고, 유명하다고 소문났다는 캐나다산 꿀도 사야 한다. 쇼핑에 나온 김에 겨울용품들도 장만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알버타 겨울용품이 한국제품보다 따뜻하지 않을까?




역시 페인트작업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평생 해야 할 붓칠을 이번 기간에 다 해본 것 같다. 어차피 하얀색 프라임 위에 또 하얀색을 칠하는 거라 한 번만 칠해도 되지 않을까 잔꾀를 부렸건만 역시나 안될 말이다. 최소 두 번은 칠해야 문이 문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빠진 곳 없이 다 한 것 같지만 페인트가 마르고 나면 이상하게 붓이 덜 간 부분이 나타났다. 내가 페인트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아빠는 바닥에 분사된 페인트를 지우셨다. 칠하는 자와 지우는 자. 아빠의 스팀기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가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우쒸!!! 나 열받았어!"

마지막 작업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 시간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에게 몇 시인 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오늘 하루 작업이 끝이 났고, 이제야 누워서 쉴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온 것이다. 한밤중처럼 깊은 잠에 빠져드는 시간은 사실 저녁 8시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저녁 8시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들을 일으켜 세웠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들이다.


밖으로 나오기는 했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 엄마가 찾고 계신다는 기능성 가방을 찾아 위너스를 돌아다녔다. 엄마에 입맛에 맞는 가방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덕분에 귀엽고 따뜻한 덧버선과 아빠와 아버님이 사용하실 따뜻한 겨울장갑을 득탬 했다.

"에드먼튼도 야경이 예쁜가?"

아빠의 한마디에 신랑이 빠르게 다운타운 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사실 나도 야경을 보기 위해 에드먼튼 시내를 나와본 기억이 없다. 야경을 보고 싶은 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아왔던가? 국회의사당 광장으로 가고 싶은데 우리도 이 길이 초행이라 멀리 보이는 의사당건물을 바라보고 같은 길만 몇 번을 돌았다.


다행히 우리가 선택한 공원은 야경 맛집이라고 한다. 강이 비친 도시의 불빛과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체 오늘 하루도 묵묵히 같은 길을 수십 번 오고 갔을 기차. 화려하지만 외로움이 가득한 에드먼튼의 야경이었다. 한국에 비하면 너무 소박하고 볼품없는 도시야경이었지만 지금 이 시간 이렇게 함께 있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아름답고 소중했다. 항상 일만 하고 잠만 잤던 우리의 주말이 야경처럼 예쁘게 빛이 났던 하루였다.


아무 말씀 없이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에드먼튼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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