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45> 11월 4일
에드먼튼에 혼자남아 일주일 동안 작업을 하시겠다는 아빠를 겨우 설득해서 에슨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할 일을 찾아 헤매는 아빠의 몸은 아침 일찍부터 청소기를 부여잡고 집안 곳곳을 청소하는 중이다.
갑자기 아빠의 허리띠가 부서졌다. 메탈 버클이 말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바지가 흘러내려 산책도, 일도 못하고 소파에 앉아 쉬기만 해야겠다"
는 아빠의 농담 섞인 말씀에 오늘만큼은 게을러지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빠의 휴식을 하늘이 도우시는지 자동차도 갑자기 시동이 걸리지 않아 우리 모두는 강제 휴가 중이다.
적막하고 조용한 하루다. 만삭처럼 무거워 보이는 하늘은 당장에라도 눈을 쏱아부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고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런 시간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은 준비를 한다고 준비가 되는 마음이 아님을 확인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빠도 나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 고모가 더 이상 고통 없이 편안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시길 기도할 뿐이다.
아빠는 마음껏 슬퍼할 시간도 가지지 못하셨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오후부터 저녁시간이 될 때까지 피아노 레슨으로 북적대는 통에 우리 가족은 7시가 다 되도록 식사도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망가진 자동차 때문에 두 남자는 차고에서 추위에 떨며 차와 씨름 중이다. 이렇게 아빠는 동생을 잃은 슬픈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참고 계신다. 다행인 건가? 아빠가 혼자 에드먼튼에 계셨다면 얼마나 그 마음이 힘드셨을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오늘 아빠는 깊은 슬픔에 빠졌지만 눈물 한 방울 떨어질 틈도 없이 우리 집은 오늘 하루도 시끌벅적 분주하기만 했다.
살짝 감기기운이 있다. 아빠한테 옮기지 않아야 할 텐데...
아이스 카푸치노와 차이티를 한잔씩 들고 모두 식탁 앞에 앉았다. 자동차를 고친 기념이라며 아빠가 식구들을 불러 모아 팀홀튼에서 축하 티 한잔씩 하자며 선동을 하셨다. 슬픔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이겨 내시려는 아빠만의 방법이다.
아빠로서, 오빠로서, 할아버지로써 아빠의 입장과 마음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셨다. 가족 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며 동생의 죽음을 위로하셨다.
"아무리 천국이라는 영생의 만남이 우리를 기다린다 해도, 육신의 이별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네. 그래서 할아버지가 눈물이 나..."라며 눈물을 보이셨다. 불구의 몸으로 한평생 고생만 했던 안쓰러운 동생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더 눈물이 나셨을 듯하다.
신랑의 기도로 우리는 함께 고모님을 보내드리고, 서로를 안아주고 축복하고 위로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아침에 멀쩡한 허리띠가 부서지기에 오늘인가... 했었지." 아빠가 조용히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