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49> 11월 8일
해가 짧아졌다.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몇 시간 일도 못하고 해가 저버린다. 한국처럼 집안에 밝은 전구나 구석구석 전기시설이 되어있지 않은 캐나다 오래된 주택들은 해가 짐과 동시에 하루를 마감해야 한다.
어제에 이어 두 번째 테이블로 사용할 목재에 니스칠을 했다. 한 개는 브렉퍼스트 테이블로, 한 개는 현관선반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부드러워져라...
부드러워져라...
나는 마법을 걸었다.
나무 상판하나로 이렇게 집안분위기가 달라진다니! 우리의 노력과 시간이 쌓여갈수록 이 집에 살게 될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커져간다. 누군가에게 행복하고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기를...
오일과 코팅역할을 하는 마감재를 사용해서 부엌 카운트 탑도 마무리했다. 존이 에폭시로 마감을 하기 전에 떨어진 페인트나 글루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았기에 카운터 탑이 마치 창고 작업실처럼 지저분했었다. 어쩔 수 없이 샌딩머신으로 깨끗이 표면을 벗겨낸후 다시 마감작업을 했다.
나뭇결이 너무 예뻐서 분위기 있는 부엌이 될 것 같아 선택했던 소재인데 실용성은 몰라도 보기에는 참 예쁘다.
유독 실리콘 작업에 자신이 없는 신랑을 대신해 공사의 모든 실리콘 작업은 아빠가 담당하셨다. 생각보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실리콘 작업 때문에 아빠 손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총처럼 간단하게 쏘면 쉽게 실리콘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나는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실리콘 총이 제법 무게가 나가기도 하지만 웬만한 힘으로 밀어내지 않으면 실리콘이 나오지 않았다. 이 힘든 작업을 힘들다는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하셨던 아빠가 참 존경스럽다. 작업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아빠 손의 피곤함도 깊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엄마와 시간이 맞아 화상통화를 하게 되었다. 아빠는 한국에 있는 식구들이 아빠가 캐나다에서 대접받으며 편하게 쉬고 있는 줄 아는 것 같다며 억울해하셨다. 그런데 드디어 노동현장에서 화상통화를 하게 된 것이다. 아빠가 조금은 억울함을 푸신 것 같아서 다행이다.
문 페인트 칠을 끝내고 떼어 내었던 손잡이를 다시 달았다. 이제 이렇게 쉬운 건 나도 혼자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신랑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음... 뭔가 이상하다.
손잡이를 한참 보고 있던 우리는 배꼽을 잡고 쓰러졌다. 손잡이가 거꾸로 달린 것이다. 오늘 또 하나 배웠다.
'아! 손잡이에도 방향이 있구나!'
바닥에 분사된 페인트를 어떻게 지워야 하나 걱정했는데 역시 유튜브에는 없는 정보가 없다. 스팀청소기를 사용하면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아주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 교대해 가며 스팀청소기로 한 땀 한 땀 아니, 한 점 한 점 페인트를 지워갔다. 말이 쉽게 지워지는 거지 떨어진 페인트 조각이 다시 바닥에 붙어 마르기 전에 닦아내야 했다. 점점 이 짓이 시간낭비인 것 같아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스팀기를 사용하는 손길에도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손에 들려진 스팀기는 마치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증기 기관차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뿜으며 요란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신랑과 아빠의 손에서는 마치 잘 길들여진 황소처럼 우직하게 조용하게 페인트의 흔적을 먹어치웠다.
저녁 8시. 신랑은 동아리 선배와 밴드연습을 하러 나갔다. 신랑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악기가 있어서, 또 함께 연주할 동아리 선배가 가까이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신랑이 나가고 조용해진 집. 역시 일을 끝맺지 않고는 잠이 오지 않는 아빠와 난 결국 야간작업에 들어갔다.
방에 페인트를 남겨둔 채 오늘 작업을 마무리한 게 자꾸 마음에 걸렸는데 아빠도 마찬가지셨나 보다. 난 열심히 스팀기로 페인트를 녹이고 아빠는 열심히 걸래로 닦아내셨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집중력과 체력의 한계에 도달하자 울렁울렁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하자는 말이 나오려는 순간 "혜진아. 여기 닦아놨다. 여기 여기! 이쪽으로 건너와라" 아빠가 열심히 초벌작업을 해서 나를 부르셨다. 귀신에게 홀린 억지로 이끌려 방 두 개를 깨끗하게 청소했다.
나도 모르게 불평이 터져나왔다.
"악덕업주는 내가 아니라 아빠네 아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