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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birdme Aug 10. 2023

[기록하는 인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섬세함이 만드는 완성도, 상상력과 물음이 더해지는 작가와 작품



7월, 기다리고 기다렸던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를 다녀왔다.


한번쯤은 '어? 이 그림 뭔가 익숙한데?!' 싶을 법한 호퍼의 작품들

쓰-윽 광고나 헤이즈의 헤픈우연 등 광고, 뮤직비디오, 해외의 영화에서도 많이 오마주가 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이후 오랜만에 방문한 SEMA


나 또한 매체를 통해 몇년 전 호퍼를 알게 되었고, 색채나 그림이 주는 분위기가 맘에 들어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전시를 찾아보다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공동으로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개최한다고 하여, 꼭 보고싶은 마음에 사람이 적어지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7월 초, 평일(목요일)에 관람을 했는데, 한산하게 보고 듣고 느끼면서 감각들을 채울 수 있었다.

도슨트도 듣고 싶어 사전에 알람맞춰놓고 예약도 착착 굿굿!!


* 에드워드 호퍼 전시 도슨트는 서울 공공서비스 홈페이지(https://yeyak.seoul.go.kr/web/reservation/selectReservView.do?rsv_svc_id=S230331155113949849)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매월 다음 날 오전 11시/오후 5시에 도슨트 예약이 열리는데, 전시기간이 8월 20일까지라 지금은 당일 또는 전날에 잔여좌석을 확인해보는 방법 밖엔...*


* 도슨트를 신청하지 않아도 유지태 배우의 음성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도 있다.

 

드디어 전시관람 시작!

2층 → 3층 → 1층 순으로 도슨트를 먼저 듣고 다시 천천히 작품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도슨트를 들으면서 이번 전시회에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같은 대표작이 없어 아쉬웠다는 평도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보지 못했던 습작과 드로잉을 볼 수 있어 꽤나 좋았다.

완성도나 돈의 가치로는 원화에 비할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처음에 생각하고 보고 느낀대로 쓱쓱 그려나가는 습작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편.


여담으로 호퍼는 습작을 19번이나 그릴 정도로 완성도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 1년에 1~2작품 정도만 그리고 생애 160점 정도를 남겼다고 한다. 피카소는 비슷한 시기에 10,000여점을 그릴 정도였다고ㅋㅋㅋㅋㅋㅋ

Study for Nighthawks(1941 or 1942), * 출처: https:/whitney.org


처음 전시관에 입장하면 호퍼의 여러 자화상(Self-Portrait)들을 볼 수 있었다.

화가이기 때문에 손을 그린 작품도 많았고 또 돈을 벌기 전과 후의 달라진 인상을 느낄 수 있어 재밌었다ㅋㅋㅋㅋ 고등학생 반항아 같은 느낌에서 제법 온순해진 호퍼씨..ㅎ

Three Studies of the Artist's Hands(1943), Self-Portrait(1903, 1925-1930), * 출처: https:/whitney.org


또 우리가 보는 대다수의 작품들이 에드워드 호퍼가 있는 풍경과 인물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풍경, 인물을 그렸다고 한다. 호퍼의 사실주의는 다르다고 설명해주셨던 도슨트를 들으니, 추상회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뭔가 띠용하기도 했고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상상을 발휘했을까?라는 물음이 생기기도 했다.


<계단(Stairway)> : 문명과 자연의 경계

<철길의 석양(Railroad Sunset)> : 저 석양이 원래 봤던 석양이 맞을까...?

<오전 7시> : 뒷배경과 앞이 다른 작품

Stairway(1949), Railroad Sunset(1929), Seven A.M.(1949), * 출처: https:/whitney.org

 

조세핀을 그린 대표작 중 하나인 <햇빛 속의 여인(A Woman in the Sun)>

조세핀의 키가 152cm 정도였고 당시 78세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랑의 힘인가?

A Woman in the Sun(1961)


서울시립미술관(SEMA) 3층에 있는 포토존


전시를 보며 또 다른 띠용했던 포인트를 적어보자면, 그건 바로 <푸른 저녁(Soir Bleu)>

캔버스 자체가 크고 뭔가 다양한 인물들에 시선이 가는데, 알고보니 각자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포인트는 기둥이었다.
작가와 관객의 경계를 구분지어 놓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학예사님의 말씀을 듣고 작품을 보니 심장이 두근..!

Soir Bleu(1914), 출처: https:/whitney.org


당시 호퍼가 그린 작품의 구도도 신박해서 이목을 끌었다고 하는데, 타고나길 센스가 넘치는 듯하다.

그래서 여전히 사랑받고 오마주가 되나보다.

특히나 <밤의 창문(Night Windows)>과 <뉴욕 실내(New York Interior)>는 뉴욕을 큰 창문으로 관찰하는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았기에 더욱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한편으로는 관음증이 아닌가 싶어 욕도 많이 먹었다고..;;ㅎ

Le Quai des Grands Augustins(1909), Le Bistro or The Wine Shop(1909), New York Interior(1921)

* 출처: https:/whitney.org


작품의 완성도는 장부에서부터 나온다...*

스케치만 하는게 아니라 인물이나 성격, 배경까지 장부에 적어놓고 그리는 섬세의 끝판왕이었다.

아마도 호퍼의 MBTI는 INFJ 아니었을까? 특히 극 J인듯

뭔가 영화를 만들었어도 굉장히 잘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단한 사람~

Artist's ledger - Book 1(1913-1963), 출처: https://sema.seoul.go.kr


엄청 꼼꼼하게 구상하고 기록한 결과물 중 하나, <이층에 내리쬐는 햇빛(Second Story Sunlight)>

Second Story Sunlight(1960), * 출처: https:/whitney.org


이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의 에칭판화도 꽤 많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실 판화를 잘 모르고 관심이 없었는데, 정제되어있지만 동적인 느낌을 주는 <밤의 그림자(Night Shadows)>는 보자마자 오?! 이걸 이렇게 그릴 수 있다고?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역시나 명작이었다고^^

Night Shadows(1921), * 출처: https:/whitney.org


1층 전시관은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 해서 원없이 찍었다.

조세핀을 그린 작품이 진짜 많았는데, 특히나 스케치를 하고 있는 조세핀의 모습이 압도적이었다.

그림 한 점 한 점에서 애정과 미안함, 고마움이 묻어났다. 원래 화가였던 아내가 자신을 만나면서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 내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웠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와이오잉의 조(Jo in Wyoming)>라는 작품이 가장 눈길이 갔다.

뒷좌석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조의 모습을 그리며 에드워드 호퍼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Jo Hopper Reading(1935-1940), Jo in Wyoming(1946), Jo Sketching at Good Harbor Beach(1923-1924)


순수미술을 좋아했기에 먹고 살기 위해 그렸던 일러스트를 싫어했다던 호퍼

그렇지만 재능이 아까운걸요...

Illustration for H. Addington Bruce(1917), Men Seated at Café Table(1906)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받은 가장 내밀한 인상을 최대한 정확히 옮겨 기록하기 위함이다.
나는 가능한 가장 마음에 들고 인상적인 형태로 나의 느낌을 표현하여 노력했다.


서울시립미술관 3층에서 호퍼가 직접 낭독한 성명서가 영상으로 나오는데, 그 영상에 나왔던 위의 두 구절이 가장 에드워드 호퍼와 전시를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자세히 보아야 보이고, 자세히 보아야 더 즐겁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에드워드 호퍼만의 사실주의 속에서 나 또한 상상하고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고, 호퍼의 성격과 섬세함을 느낄 수 있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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