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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케 Jul 04. 2023

건강만 하자는 게 그렇게 어려워?

건강을 잃는다는 건 다 잃는 거란 말.

어릴 땐 전혀 와닿지 않았다. 20살이 될 때까지 병원 한번 제대로 간 적 없이 건강하게만 커왔기 때문에 그런 소망은 바라지도 않았다.


20살이 되고 장염을 심하게 자주 앓기 시작했지만 병원을 가면 다 낫게 해 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20대 초반이 넘어갈 무렵, 면역 문제로 인한 희귀병 진단을 받게 됐다. 청천벽력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았다. 가족들은 온통 슬픔에 젖었고 그런 가족들을 위로할 틈 없이 나마저도 우울함에 젖어들었다.


다행히 죽음에 이르는 병은 아니었고, 예후가 좋은 편이라 평생 관리만 잘하며 살면 된다고 했다. 길었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는 날, 긍정의 힘으로 무장하고 내 온 힘을 다해 건강을 지키리라 다짐하며 병원 문을 나섰다.


그 후로 약 10년간 큰 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큰일이 벌어지지만 않았을 뿐 자잘한 탈은 아주 많았다. 걸핏하면 피를 보고, 신장에 염증이 생겼다고 하질 않나, 자궁에 용종이 생겼다고 하질 않나 그 외에도 일상에 지장을 주는 건강 문제들이 꽤 많다. 원인을 알아보면 모두 면역력 때문이라고 한다.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이 면역력이라는 게 정말 증오스럽다. 너무 강하면 내 몸을 스스로 파괴시키고, 너무 약하면 내 몸을 보호하지 못해 아파한다.


크게 무리하는 것도 없는데, 그 흔한 스트레스도 받지 않으려 죽을힘을 다해 애쓰는데도 늘 어딘가 아프다. 다 필요 없고 그냥 건강만 하자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향한 내 인사에는 늘 아픈데 없지? 건강 잘 챙겨라, 건강하자 이런 말이 끼어있다. 건강에 해로운 걸 하는 사람을 보면 걱정스럽고 애가 탄다. 있을 때 지켜야 하는 게 건강인데, 속으로만 외치고 또 외치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픈데 하나 둘쯤은 가지고 사는 게 사람이라지만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여기서 더 아파도 괜찮은 걸까? 면역병이 있는 내가 다른 병을 감당할 힘이 있을까? 아픈 건 둘째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아픈 상처로 남는 게 더 무서운 일인 것 같다.


오늘도 병원을 다녀와서 굉장히 센티해졌다. 우울과 공포에 휩싸여 이런 글을 남기고 있다. 누군가는 크게 걱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내일이면 또 괜찮다, 괜찮다를 외치며 긍정의 말로 나를 다독이며 살아갈 것이다. 늘 그렇듯. 그러니 오늘 하루만큼은 그냥 내가 맘껏 슬퍼할 시간을 주고 싶다.


그럼 난 이만.

모두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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