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단기 아르바이트 경험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주 5일 풀 근무로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한 건 한 회사의 인턴 자리였다. 막 취업준비를 시작하던 때에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고대학교 4학년 2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앞둔 채로 첫 출근을 했다.
회사 규모도 꽤 큰 편이고 전공과 관련된 업무라 잘 해낼 자신도 있었다. 단기 인턴사원이라 이렇다 할 복지 혜택까지는 없었지만 잠시나마 고달픈 취업 시장 속에서 골머리를 썩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찬 기분이었다.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는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마저 사회초년생에겐 설레고 즐거운 일이 되었다. 강남으로의 출근.통근 시간은 1시간 반 남짓 소요되었지만 대학 4년 내내 2시간 거리를 통학으로 버텨낸 나에게는 전혀 거리낄 게 없었다.새까만 정장과 와이셔츠를 갖춰 입고 출근하는 내 모습. 지하철에서 내려 강남에 발을 디디는 순간 어엿한 직장인이 된 것 같아 어깨가 절로 으쓱댔다.
명절 상여금으로 받은 기프트카드
인턴이었던 내 자리는 키 크고 날씬한 여자 직원 옆 자리였다. 이 분이 내 사수였고 당시엔 사원이라 호칭을 선배님으로 정리했지만연차가 꽉 찼던 시기라 금세 대리로 승진하셨다고 한다. 똑 부러지는 성격의 그녀는 내가 해야 할 업무를 짧고 간결하게 설명해주었고다소 귀찮을 수 있는 질문에도 친절히 답해주며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첫 발을 디딘 사회라는 낯선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동아줄이기도 했고 당찬 성격과 시원시원한 일과 삶의 경계를 확실하게 구분 짓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그녀를 나의 롤모델로 삼았다.
내 업무는 클라이언트가 보유하고 있는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댓글관리나 CS문의에 대한 답변,회원 만족도를 위한 소소한 이벤트 기획 정도의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커뮤니티가 꽤 활성화되어있는 편이라어마어마한 이벤트 참여율에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회원들과 나누는 댓글이 즐거워 온종일 싱글벙글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즐거움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내가 속해있는 팀은 기획 팀이었고, 이벤트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내 디자인팀에 의뢰를 해야 했다.다른 팀으로 작업 의뢰를 요청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는데, 함께 생활하며 익숙해진 기획팀과는 달리 디자인팀은 냉랭한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찾아올 때마다 일거리를 들고 오니 반가울 리 없고, 게다가 인턴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서툰 부분이 많기도 했다. 처음엔 메일로 의뢰를 했는데 그때마다 자리로 찾아와 이런저런 수정사항을 말씀하시기에나중엔 직접 찾아가서 기획 의도와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자리로 돌아오는 방법을 택했다. 거침없는 피드백으로 멘털에 타격을 입을 때도 많았다. 칭찬만 듣고 자랐던 내 인생에 대놓고 질타를 받는 순간이 찾아오니 온 몸이 얼어붙은 듯 굳어버리기 일쑤였다. 높은 직책을 무기로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것은 아직도 조금 섭섭하지만 그 과정 또한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의뢰서를 점점 더 꼼꼼히 체크할 수 있게 되었다.당시엔 어려움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일이지만 결국은 피와 살이 되어 스스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직장생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