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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정아 Feb 07. 2024

호수에 기대어 산다는 건

집 근처 호수 산책로가 있다. 내가 자주 걷는 곳이다.

어떤 날은 스쳐 지나가지 못하고 호숫가 근처에서 한참 동안 머물러야만 할 때가 있다. 최근에는 군데군데 살얼음이 얼었던 호수가 입춘의 당당함에 사르르 녹아가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몇 년 전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 극적으로 천천히 몸이 회복되었고 좀 살만 해지니 호수가 생각났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호수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눈물겨웠다. 행복은 언제나 내가 손 뻗으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호수를 산책한다는 것은 인생을 명품처럼 만드는 일과 같다. 이실 짓고 마음이 좋을 때보다 안 좋을 때 호수를 찾았다. 온통 먹구름으로 내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때, 우울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호숫가를 걸었다. 마음의 디톡스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고 나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으로 마음은 정리가 되고 차분해진다. 쉽게 포기하고 단념을 잘하는 나는 호수에 내 마음을 '휙' 던져 버렸다. 어렸을 적에는 고민이 있으면 친구들 혹은 가족과 많이 나누었다. 지금은 오히려 고독의 시간을 만들어 터벅터벅 걸으며 복잡한 머릿 속을 환기시킨다. 그곳의 물이 오염이 되었다면 내 마음속 시꺼먼 구정물도 한몫했음을 고백한다.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려면 바람이 불어 나무를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산책은 나를 움직이게 하고 나의 태도도 변화시킨다. 기분이 나아지기도 하고, 때론 여전히 침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오고 가는 산책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줍줍 하면서 의외로 쉽게 고민을 잊기도 한다.


쇼펜하우어의 "크게 기대하지도 크게 한탄하지도 마라" 라는 문장을 품에 꼭 안고 호수를 그윽하게 바라보다 걷다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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