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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정아 Feb 16. 2024

아이들은 나보다 한수 위였다.

허탈했다.

꼴랑 이거라고?

종종걸음 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고작 4가지 반찬뿐이라니...

분명 열심히 힘들게 많이 준비한 것 같은데...

왜 이것 뿐이지?

단출해 보이는 반찬에 허무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번주는 딸내미의 생일주간이라는 핑계로 외식을 몇 번한 덕분에 살짝 몸이 편했다. 한 솥 끓여놓은 미역국으로 몇 날 며칠을 대충 때우다 결국 나 역시도 그 맛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아이들은 점점 엄마의 밥보다 바깥음식 선호한다. 대여섯 가지의 엄마표 메뉴를 돌아가면서 밥상 위에 올리니 아이들도 한눈팔고 싶은 마음은 당연지사!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도 어렸을 적 엄마가 매 겨울마다 끓여주시는 뼈사골국을 몇 날 며칠 먹는 것이 곤욕스러웠기에...


우리 집 성장기 아이들의 뱃속엔 분명 상거지 대여섯 명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뒤만 돌아서면 배고프다, 무엇이 먹고 싶다는 아이들의 입맛과 식비를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넓고 깊은 아이들의 고래 뱃속을 채우려면 양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내손 내밥을 먹여야만 한다. 때론 나도 밥 하기 귀찮고 힘들면 아이들에게 못 이기는 척 인심 쓰듯 외식을 나가지만.

그리고 집에 있는 엄마가 집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직무유기' 같은 죄책감이 몰려온다.  덕분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그저 '방학아, 빨리 지나가라.' 속에서 울부짖을지언정 '난 엄마다'라면서 다시 또 부엌으로 들어선다.





오늘은 냉장고 파먹기,

미루고 미루던 나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앞치마를 두른다.


조금만 늦었으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뻔한 콩나물을 건졌고,

오늘은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이라 좋아하는 두부조림도 하였고,

지난봄에 엄마가 뜯어주신 취나물을 들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쳤고,

아이들이 주문한 매콤 달콤한 진미채 볶음도 볶았다.

우리집 보물인 '들기름'은 거의 모든 반찬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간다. 맛과 풍미를 한껏 올려주는 그 녀석이 있어 언제나 든든하다. 오늘도 그 녀석 덕분에 집안은 고소함으로 들썩인다.


아~ 맛있어.

먹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눈으로 코끝으로 달달함이 와닿는 것을 보면 분명 맛있겠지!!


언제나 그랬듯 엄지 척을 날려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하며 당당하게 아이들에게 맛을 선보인다.


딸 : "엄마, 진미채 볶음 1% 부족해. 고추장 반스푼만 더 넣어봐"

아들 : "엄마, 두부에 간이 하나도 안 배었어. 더 졸여야겠어."


대단한 미식가들이었다. 정말 아이들의 지시대로 진미채에 고추장을 더 넣고, 두부를 더 졸여보니

간이 딱 맞았다. 그제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에게 '그래, 이 맛이지' 하는 표정의 미소를 보낸다.

엄마보다 더 간을 잘 보는 아이들. 아이들은 나 보다 한수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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