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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정아 Mar 11. 2024

새해 첫 기적

2024년 3월 7일,

쿵쾅쿵쾅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난생처음 우황청심원을 구입했다.

"한 시간 전에 마시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어요!"라는 약사님의 지시에 따라 착한 어린이처럼,

시간을 딱 맞춰 운전 중에 마셨다.





17명의 사람들과 한 대기실에서 조교의 주의사항을 듣고 시험순번을 정하기 위한 제비 뽑기를 하였다. 17명 중 14번째, 빨리하는 게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늦은 순번이 맘에 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아저씨들로 가득 메운 시험 장소에 홍일점이었던 나는 '저 여자애는 왜 지게차 시험을 보지?'라는 궁금해하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실제 그렇게 물어보는 아저씨 두 분이 계셨다.

의기양양거리며 그런 시선을 즐기기 딱 좋은 상황이었겠지만.

그럴 만한 여유는 1도, 아니 0도 없었다.


그동안 아무리 잘했더라도 시험이라는 것이 그날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이미 마셔둔 우황청심원 덕분이었는지 심장의 진동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어쩔 땐 잘되고, 어쩔 땐 잘 안 되는 동작 '팔레트에 포크를 수평으로 잘 끼워 맞춰 빼내는 것'나에게 큰 숙제였다. 오로지 그것 만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그리며 내 순서를 기다렸다.


그날따라 꽃샘추위와 강한 바람은 사하라 사막의 모랫바람처럼 거칠었다.

머리카락 한올까지 흘러내림 없이 실핀으로 틀어 올리고,

 "14번, 탑승하세요."라는 호각소리에 맞춰 다부지게 지게차에 올라탔다.


앗싸~! 팔레트에 조심히 포크를 끼어넣고 빼내기 성공!!


그렇게 안심하고 다음 코스를 생각하며 지게차를 작동하는데...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감독관들이 나에게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나는 "왜요? 왜?" 영문도 모른 채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다.

"선 밟았어요! 내려오세요"


그렇다. 나는 보란 듯이 노란 선 위에 한쪽 바퀴를  올려놓고 있었다.


학원에서 연습했던 차량에 어느샌가 익숙해져 시험용 차량의 브레이크 강약에 감이 없었다. 조절 미숙이었다. 지게차가 쭉 미끄러지듯 바퀴가 춤을 추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실격당하고 나니 어이가 없었다. 그저 아쉬움만 한가득 품에 앉고 지게차에서 내려왔다. 실격당한 명단에 내 이름을 적고 싸인하는데 떨어진 사람들의 이름이 주르륵 보였다.

대충 스캔해도 10명이 넘는 수검자들을 눈에 넣으며 한편으론 안심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동병상련 같은 묘한 안도감에 떨어진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내심 위로가 되었다.





이번 실기를 준비하면서 나는 반칠환시인의 '새해 첫 기적'이란 시를 내내 마음에 품고 다녔다.

같이 연습하는 청년들의 능수능란한 운전 솜씨를 부러워하면서,

몸 따로 생각 따로 운전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나만의 총량을 생각하였다.

그것이 채워지면 곧 나도 프로 지게차 드라이버가 되겠지?라는 희망으로

달팽이처럼 내 속도에 집중하였다.

그들과 한 날 한시, 그곳에 도착할 것이라며 나만의 의미를 부여했다.


달팽이는 여전히 느림보 걸음으로

다음 시험을 위해 따뜻한 방구석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내가 실수했던 그 장소가 더 또렷이 떠오른다.

적어도 그곳에선 실수하지 않겠지?


나의 새해 첫 날,

그곳에서 만날 그들을 생각하며!!



새해 첫 기적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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