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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키 Nov 07. 2023

마흔 사춘기의 작은 반란

항상 그랬다. 감당 못 할 일이다 싶으면 도망갈 곳부터 찾았다. 부모님 뒤, 남편 뒤, 아이들 뒤, 이번에는 공부 뒤로 숨었다.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라는 거창한 이유를 달아 성역을 만들어 나를 가두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온라인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였나?, 묻고 또 물으며 나에게만 집중하려 애썼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긴 겨울은 지나갔지만, 마음의 봄은 오지 않았다. 내 세상은 여전히 꽁꽁 얼어 있었다. 

 남편은 안방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뒹굴었다. 함께 있어도 혼자인 마음, 한집에 있으면서도 기묘하게 쓸쓸해지는 풍경들이 자꾸만 내 마음에 외로움을 더했다. 그렇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어떤 것에도 묻지 않았고 답을 구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가족은 각자의 모양새로 그냥 살아가는 거라고 그렇게 혼자 정의 내려 버렸다. 

 나만 바라보는 엄마의 곁은 엄마만 바라보는 둘째 나연이가 지켰다. 나연이는 항상 내 옆에서 ‘소울메이트’ 역할을 자처했다. 가치관이 틀린 부부관계, 고된 가사노동, 힘든 육아 등의 소소한 걱정과 불만까지도 나연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들어주었다. 

 하루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다리의 부기를 빼겠다며 나연이와 ‘ㄴ’자 모양으로 나란히 누웠다. 얼굴에 팩 한 장씩 나눠 붙이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빠 때문에 짜증 났었잖아” 

 “왜?” 

 “내가 청소기 돌리면 걸레질 정도는 해 줘야 하는 게 맞지 않니? 

그런데 소파에 앉아 커피 마시다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더라.” 

 “그래서?” 

 “그냥 내버려두었어. 싸우면 뭐 하냐?” 

 “오빠는 사춘기가 언제 끝날까?” 

 “안 끝날 거 같은데? 끝나긴 하는 거야?.” 

 15분이 지나자 얼굴의 붙인 팩 시트지를 떼 내면서 나의 소울메이트가 쐐기를 박았다. 

“엄마, 나는 결혼 안 할 거야. 나랑 안 맞아.”

 아뿔싸!! 지난겨울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떠 올랐다.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를 ‘무주 리조트’에서 보냈다. 코로나로 오랜만에 찾은 스키장, 하얀 설원에서 타는 스키의 맛은 여전히 좋았다. 날을 바싹 세운 새 스키와 가볍고 새하얀 스키 부츠가 나를 더 설레게 했다. 나연이와 짝이 되어 리프트에 올랐다. 말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입김이 고드름이 될 것 같은 추위와 바람에도 우리 두 사람의 수다는 멈출 줄을 몰랐다.

 “나연아~! 엄마 스키 어때? 예쁘지?”

 “응. 그런데 하얀색 너무 부담스럽지 않아?”

  “노노. 나는 아주 맘에 들어! 아빠 덕분에 스키장에서 새 스키로 즐기니까 너무 좋다. 그렇지?”

 “아~. 그런데 엄마는 왜 기분이 좋아?”

 “엄마 힘으로 바꾼 것도 아니고 아빠가 아빠 돈으로 바꿔 준 거잖아…, 그게 왜 기분이 좋아?”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이럴까? 나연이 눈에 나는 ‘경제력이 제로’인 식충이로 보이는 걸까? 때마침 정상에 도착하는 ‘기막힌 타이밍’이 나를 살렸다.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등줄기가 서늘하다. 조그만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나연이는 언제나 내가 무방비 상태일 때 ‘훅’ 들어와 한 방 제대로 먹이곤 한다. 이럴 때마다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아이에게 미안함이 배가 된다. 귀를 열어두라는 ‘부모 지침서’에 나오는 말은 헛말이 아니었다. ‘저러다 지 앞가림도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 속에서 머뭇거리다 보니 듣기보다 말할 때가 더 많아 벌어지는 실수가 부메랑이 되어버린 결과다. 

 하마터면 오늘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뻔했다. 서둘러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연이와 엄마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말해 주었다. 엄마보다 훨씬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말은 나의 진심이었다. 중학생이 된 나의 소울메이트는 역시나 애어른이었다. 사춘기 소녀들이 대부분 하는 화장, 교복 줄여 입기 등이 교칙에 어긋난다며 관심 두지 않았다. 

 그런 나연이가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예원 중학교에 다니는 단짝 친구와 주말에 학원에서 연습하는 것이다. 그날도 다은이와 긴 연습을 하고 돌아온 일요일 오후였다. 남편은 상갓집에 가고 범이는 친구들과 영화를 본다며 아침부터 나가고 없었다. 셋째와 막내는 이모를 따라 ‘구름이’와 강아지 카페에 갔다. 오랜만에 나연이와 나 둘만 집에 있었다.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려고 집 앞에 있는 피자가게에 갔다. 포테이토 피자 한 판과 콜라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은이는 학교생활 잘 적응하고 있어?”

“응. 선배들한테 배꼽 인사 해야 하는데 규율이 엄청 빡세대”

“아참, 다은이 이번 대회에서 2등 해서 겨울방학에 독일에 있는 로얄 발레스쿨에 간대”

“오!! 역시 다은이. 일찍부터 ‘발레리나’ 꿈 하나만을 보며 달리더니 잘했네.”

 올해 초, 다은이 엄마가 ‘꼴찌로 합격한 거 같다고, 잘하는 애들이 진짜 많다’ 던 걱정과 한숨이 떠올랐다. 연습벌레 다은이가 잘 해내고 있다니, 정말 대견했다. 때마침 먹음직스러운 피자가 나왔다. 

 “연습하느라 고생했는데 맛있게 먹어” 

 “나 예고 갈래”

 한 조각을 접시에 덜어주고 나도 한 조각을 들어 막 입 안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발레를 전공하겠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쑥쑥 커서 오빠보다 더 클까 봐 걱정하던 마음이 무색하게 나연이의 키는 163cm에서 멈춰버렸다. 골격이 커서 발레에 적합한 체형인지도 의심스러웠다. 내가 말문이 막혀 주저하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나연이가 먼저 꺼냈다. 

 “팔, 다리가 길고 토슈즈를 신었을 때 꺾이는 발등이 예쁘니 살을 빼면 키도 5cm는 커 보일 거라며 가능성이 있대.”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아…, 힘든 길이 될 거야. 열심히 해 봐”

 다음날 발레 선생님과 만나 향후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꼼꼼하게 나눴다. ‘선화예고’를 목표로 시작하자는 말씀에 갑자기 내 가슴이 뛰었다. 나연이 꿈에 다가가기 위한 여정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기쁨이 얼어 있던 내 가슴을 녹였다. 

그날부터 나연이와 나는 한 몸처럼 움직였다. 남들보다 두 배 이상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하교 후 매일 3시간씩 훈련하고 돌아와 방울토마토 5알과 오이 반 개로 저녁 식사를 했다. 눈치 없는 남편이 나 몰래 치킨이라도 시킨 날에는 “가슴살로 튀김 껍질 벗겨내고 한 조각만 먹어!”라며 강제 다이어트를 시켜야 했는데 원래 식탐도 많고 먹성도 좋은 아이라 피눈물 흐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남편과 다른 아이들을 먹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름방학부터는 입시반에서 4시간씩 연습하고 개인 레슨과 마사지도 받았다. 근육통 때문에 늘 끙끙 앓았고 인대가 늘어난 오른쪽 발목은 고질병이 되었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혹독하고 외로운 길이었다. 나연이가 잘 버텨 주기를 매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했다. 

 반복되는 아내, 엄마의 일상 안에서 나 또한 지치지 않기 위해 균형을 맞추려 애썼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나를 돌보자고 약속했던 다짐을 지키며 건강한 에너지를 만들어 냈다. ‘최지연의 서편제’를 보며 국악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을 기억하기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서촌길 작은 공방들을 눈에 담기도 했다. 헤이리 가는 게 전부였던 ‘마흔 사춘기의 작은 반란’에 향기가 더해졌다. 나연이의 꿈이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끌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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