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 중의 끝, 가지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구름, 칼칼한 바람과 투명한 햇살. 아슬하게 달랑달랑 매달려 홀로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 사람들은 날 보고 처량하기도 하고, 가엽다고도 할 것이며 또 까치밥 하나 정으로 남겼다고도 하겠지…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을 갈 곳으로 모두 다 보내고 할 일을 다 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다. 하늘도 바람도 구름도, 그리고 영혼까지 꿰뚫고도 남을 만큼 투명하고 맑은 햇살까지도 온통 남은 자의 것이다. 그래서 더 도드라져 아름답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달려왔던 고단했던 날들과 곤함은 과거사가 되어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지금이라는 현재만이 보석처럼 빛나게 영혼을 감싸온다. 그래서 오늘이라는 현실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감사의 고백을 작든 크든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선택적 망각이라는 것도, 과거와 현실에 동시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그릇이 차면 다른 것을 담을 수 없듯 생각이라는 그릇은 참으로 신비하다. 그래서 어제 천둥번개가 쳤어도, 오늘 쨍하고 해가 떠오르면 가슴 벅찬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이 복잡한 것 같지만, 상당히 단순하기도 하다. 같은 듯 하지만 동일하지 않은 일상과 삶의 해석들이 인생의 풍미를 더한다.
잠시간의 여유를 즐기며, 하늘을 더 깊이 온전히 바라본다. 바람에 생각을 털고 햇볕에 잘 소독해서 곱디고운 생각만 남겨 홍시빛 아름다운 결실로 남은 길을 간다. 내 인생도 그리하겠노라 결심하며 지금껏 존재케 한 그의 사랑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