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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Apr 11. 2024

'쓰다' 그리고 '쓴다'

써서,  그래서 쓴다.

'쓰다'와 '쓴다'는 다른데도 참 비슷한 향기가 있다. 첫맛의 쓴 커피라도 음미하고 알아보려 하면 더 이상 쓰지가 않다. 그때부터는 커피를 쓰게 된다. 생각으로 시간으로 그리고 공간으로 커피를 쓴다. 기억과 추억이라는 노트에 말이다. 잔이 차면 흘러넘치는 것이 이치이듯, 무엇이든 넘치면 흔적을 남기게 된다. 생각이 넘치고 마음이 넘칠 땐 나도 모르게 글을 쓰게 된다. 마치 음식이 발효가 되듯, 어떠한 임계치나 한도에 다다르면 또 다른 변화에 이르는가 보다. 꿀벌이 꽃가루를 따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치라는 것이 그런가 보다. 인간사에 법칙이 있고 세상에는 순리가 있다. 아무리 힘센 장사라도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막을 수 없다. 저 바다의 밀물과 썰물도 돌려놓을 수 없다. 그저 따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좌절과 기다림, 그리고 성장 속에서 그렇게 한 발씩 내어가는 것이 인생임을 또다시 시인하게 된다.


글을 멈춘 지 넉 달이 되어간다. 누군가에 글이 노출되는 것이 한동안 부담스러워졌다. 그렇다고 스타 작가도 아니고, 직업작가도 아니다. 다만, 차오르는 것을 기록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지난 몇 달의 시간은 차올랐다가 다시 졸아드는 상현달과 하현달의 무한재생 모드였나 보다.


어린 시절 도덕 시간에 성선설, 성악설을 배울 때, 답을 내리긴 어려웠다. 그러나 자라온 환경 속에서 나는 인간에 대한 한없는 믿음과 사랑, 그리고 선한 존재로서의 사람을 배우고 학습해 왔다. 그런 면에서는 온실 안의 화초처럼 또는 세상물정 전혀 모르는 순진한 인생으로 그저 살아왔던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리 천사의 얼굴을 하고 웃으면서 돌아서면 남을 끌어내릴 궁리에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마음을 졸인다. 일시적인 거사에 성공했다 치면 다가올 작용에 대해 또다시 대응하느라 시간은 그렇게 태워진다. 그것이 사회라고 말들 하지만, 내가 아는 사회에서는 보지 못했던 현실들을 볼 때 난 아직도 인생을 세상을 모르는 사람인 것만 같다.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모두 동일한데 그렇게 남을 끌어내려 밟고 올라가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나면 근 육십의 나이에 이른다. 즐길 시간은 야박하게 주어진다. 순간은 달콤하고 고통은 길다. 왜 그리 살아야 하는가... 다들 왜 그리 굶주린 이리 와 늑대처럼 살아가는 것일까. 먹이를 앞에 두고 혈투를 벌이는 짐승이나 권력 앞에 형제도 없는 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득이 있으면 삼키고 이득이 없으면 버리고 돌변하는 유연성의 끝판왕으로 살아가는 인생들! 그렇게 살지 못해, 그리고 살 수 없어 난 어쩌면 여전히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지도 모른다.


나의 길을, 나의 삶을, 그리고 나로 살기 위해 난 정글을 빠져나왔다. 뱀과 전갈들이 우글거리며 서로 쏘지 못해 아우성거리는 그 속을 말이다. 감사하다. 빠져나올 용기가 있어서, 그리고 결단할 수 있어서 말이다. 봄이다. 날이 따뜻한 봄날이 왔다. 그간 하고 싶었던 것, 그리고 내가 잃어버리고 잊었던 것을 하나씩 내 인생에 써본다. 던 것이라도 지금은 달게 느껴질 만큼의 연륜과 삶의 근육은 생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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