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철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 그랬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철이 일찍 든 것 같다. 그때는 철든다는 것이 칭찬인 줄로만 알고, 다른 애들보다 먼저 어른이 됐다는 생각에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식에 홀로 걸어갔으며, 종이 게임에서 사용되는 작은 말 하나와 같았다. 엄마는 언니와 나를 혼자 키워야 했고, 돈을 버느라 한시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입학식을 혼자 가는 건 정말인지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그곳으로 구멍이 난 듯 시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어렸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후 나는 초등학교 6년을 다녀야 할 어린이 시기를 1년 만에 끝마쳐야 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엄마 아빠의 이혼은 그 당시도 지금도 자랑할 만한 거리가 되지 못했고, 나는 거기에서 벌써 마이너스 10점은 지고 들어가는 사람이 되었다. 왜 남에게 미움받는 게 그렇게도 싫고 무서웠을까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들의 세계에도 두 부류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도태되는 부류가 꼭 있기 마련. 유복하며 부모가 둘 다 있는 가정에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한 아이는 옷도 가지런히 예쁘게 입었거니와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예쁘고 유복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어딘가 꾀죄죄한 옷을 입고 소매가 닳아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 중 몇은 반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기도, 어디서 맞고 오기도 한 듯 얼굴에 멍이 들어있는 아이도 있었다.
어느 날 같은 반에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눈이 찢어진 키가 작은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누가 말했는지 모르게 반 아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전학을 온 지 한주, 두주가 지났고, 처음에는 같은 학년 남자아이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더니 나중에는 반에 혼자 남아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는지 나중에 그랬는지, 그 아이는 같은 반 아이들을 그림으로 그리더니 칼로 죽이는 시늉을 했다. 그날 점심시간 우리 반 남자아이들은 줄을 서서 그 아이를 발로 찼다. 다음 쉬는 시간에는 복도 끝 어두운 곳으로 가서 할아버지와 같이 산다는 전학온 아이의 얼굴을 때렸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고 들어온 그 아이의 얼굴은 보라색으로 멍들어 있었다. 나는 쉬는 시간에 친한 남자애 한 명을 불러서 이유를 물었다. 왜 저 아이를 때렸느냐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어릴 때 더 정의로운 성격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는 잘 가늠이 되지 않지만, 그 아이와 나는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사는 그 아이네 집은 좋지 못했고 옷 입은 행색도 그러했다. 우리 반에서 일어나는 불합리와 폭력에, 나는 작은 초등학생 아이 한 명일 뿐이었다. 이후로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다.
이후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일찍 철이 들었고, 나의 이런저런 모습을 들키지 않게 숨기느라 어린 시절이 내내 바빴다. 우리 집식구가 셋이라는 건 내가 20살이 되도록 대부분의 친구들이 알지 못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알게 된 같은 처지의 친구 딱 1명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살았다. 그렇게 나는 비록 아파트가 아닌 빨간 벽돌 빌라에 살았지만, 깔끔한 옷을 입고 예쁜 핀을 하고 고급 취미를 가진 아이가 되어갔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더욱 또렷해졌다. 한순간도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일찍 철이 든 나는 내내 가면을 썼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진이 빠졌다. 지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