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식물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손톱 위에 봉숭아 물들이기도 꽤나 흥미로웠다. 초등학생 때는 반 친구들이 연예인 이름을 읊을 때면 누가 누군지 잘 몰라 그냥저냥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까, 하루는 체육시간이 끝나고 친구들과 교실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교실 문을 연 순간 황홀하고 향긋한 냄새나 내 코끝에 진하게 풍겨왔다. 흰색과 보라색의 조화로운 히아신스의 고급스러운 냄새가 나와 온 교실을 장악했다. 나는 히아신스를 사랑하게 됐다. 이렇게 향기로운 꽃을 가져온 아이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우리 가족은 빨간 벽돌 빌라에 살았고, 내가 살던 동네에 새로운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생기면서 강제 주소지 이전과 함께 나와 언니는 강제 전학을 했었다. 한 반에는 45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다. 베이비 붐 세대에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한 반에서 90% 아이들이 새로 생긴 아파트에 살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나와 같이 새 아파트를 지나 그들이 사는 새 군락을 벗어난 곳에 살았다. 나는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였고 나는 새 아파트에 사는 아이와 그 외 나와 같은 곳에 사는 아이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하루는 새 아파트에 사는 친구네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신발을 벗고 친구네 집에 들어서자 당시 부를 상징하는 학교에 있는 것보다 더 큰 TV가 나를 압도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퍼즐 맞추기 놀이를 했다. 대충 만들어진 퍼즐이 아닌 고급 프로 퍼즐이었다. 난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으며 우리 집에 그런 퍼즐은 없었다. 이후로도 그 친구와 함께 학원을 함께 다녔다. 예쁘게 당겨 묶은 머리와 스크런치, 예쁜 곰돌이가 새겨진 티를 입은 친구였다. 그 당시 동대문에서 옷을 사다가 장사를 했던 우리 엄마는 나에게 부족함 없이 옷을 입혀줬는데, 어딘가 모르게 그 친구가 입은 옷의 디자인을 동대문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은근히 집요하게 찾아 헤맸던 곰돌이를 나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내내 찾을 수 없었다.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프린트로 새겨진 곰돌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곰돌이 티를 입었다.
그 곰돌이는 백화점에만 파는 티니위니라는 브랜드 옷이라는 걸 중학교에 올라가고 비로소 우리 집 형편이 나아질 때쯤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전까지 백화점에 제대로 가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늦은 나이에 티니위니를 곰돌이 티셔츠를 입었다. 중학생이 된 친구들은 티니위니를 입지 않았다. 어딘가 유행과 다르다고 느껴졌고 유치한가 싶은 느낌도 들었지만 엄마가 옷을 사준다고 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티니위니 곰돌이 티셔츠와 카디건, 패딩을 골랐다. 그 정교하고 세련된 곰돌이 여야만 했다. 그 곰돌이는 어린 시절 못 이룬 한과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