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msoom book Jul 12. 2023

찹쌀 김밥

엄마는 찹쌀밥을 좋아했다.  잘 불린 쌀에 소금 톡톡 뿌려 갓 지어낸 밥을 먹으면 쫀득한 식감과 따뜻한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하루는 내 소풍날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현장학습인지 수학여행인지 도착한 곳이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학급 친구들과 어딘가로 외부 활동을 가는 날이었다. 엄마는 그날도 어김없이 어둑한 새벽이지만 동이 트기 전 게슴츠레한 밝은 하늘을 위에 두고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경험해 봤을 사람만 알 수 있는 식은땀 나는 피곤함. 몸이 둔해지는 뻐근함. 그 시절 밤낮을 바꿔가며 돈을 벌던 엄마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왔다. 잠을 청할 틈도 잠시, 바쁜 날들로 엄마가 잠시 잊고 있던 '나의 소풍날'이었다. 나는 즐겁지 않았다. 부족한 잠으로 무거운 눈꺼풀과 몸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는 주방 바닥에 고개를 푹 숙인 채 김밥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엄마는 오늘은 소풍날인 줄 모르고 전 날 맨쌀이 아닌 찹쌀을 불려놓았다.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반찬통에 넣은 김밥 생각에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친구들과 나눈 대화, 버스 맨 앞에 달린 노래방 기계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모두 아주 작은 창문 틈새로 재빨리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내 귀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찹쌀 김밥'만 생각하다 휴게소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학급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셨다. "벤치에 앉아서 가져온 도시락을 간단히 먹고 다시 출발하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들 소풍날이라 그런지 예쁜 도시락에 김밥이나 유부초밥, 과일을 싸왔고, 그보다 형편이 좋은 아이들은 스테인리스로 된 고급 도시락통에 각자 정성 가득해 보이는 음식을 싸왔다. 나는 가방에서 내 도시락통을 꺼내는 게 겁났다. 내 도시락통은 반찬통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원터치 도시락통. 나는 도시락통 한 면을 한 손으로 살짝 가리며 꺼냈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 안쪽으로 보이는 김밥은 처참했다. 내가 걱정했던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김과 찹쌀이 한데 뭉개져 마치 떡처럼 되어버린 질기게 엉겨버린 김밥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김밥을 다 먹은 반찬통은 다시 가방에 넣었다. 엄마는 다 먹고 남은 반찬통은 버리라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반찬통을 버린다면 창피함에 맞서 완전히 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없는 반찬통을 내팽개쳐 버려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소풍에서 돌아왔고, 나는 아주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엄마한테 말할 수 있었다. "엄마, 나는 찹쌀밥이 싫어. 그렇지만 엄마가 그때 해준 '찹쌀 김밥'은 다 먹었어." 엄마의 잠과 바꾼 김밥을 버릴 수는 없었다. 김에 엉겨버린 찹쌀밥은 이렇게 질기고 단단해질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이제 찹쌀밥을 먹지 않게 됐지만, 그 시절 엄마의 '찹쌀 김밥'과 진한 사랑은 잊을 수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가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