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천년 인천의 희망을 위한 시민대토론회의 의미

again 1999

by 손동혁

1999년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인천에서는 ‘새천년 인천의 희망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가 열렸다. 지방자치제가 본격화된 지 오래되지 않았던 시점에 민관(民官)이 힘을 모아 마련한 이 자리는 도시의 미래를 시민과 함께 토론하려는 실험이었다. 주최는 인천시민 대토론회 준비위원회가, 주관은 인천발전연구원(현 인천연구원)이 맡았으며, “인천을 알자, 인천을 토론하자, 새 인천을 건설하자.”를 슬로건으로 삼아 새로운 세기를 맞아 인천의 비전과 정체성을 시민 스스로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478_672_3436.jpg


대토론회의 주제는 ‘인천·삶 그리고 대안’이었고 삶, 문화, 관계, 공간이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도시 전반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삶의 영역에서는 경제, 환경, 대중교통 등 시민 생활의 기반이 되는 문제들이 다루어졌고, 관계의 영역에서는 시민사회, 노동, 언론, 리더십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공간의 영역에서는 도시공간의 재편과 활용을, 문화의 영역에서는 인천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탄생시키기 위한 비전이 집중적으로 제시되었다.


문화 분야에서는 두 개의 글이 발표되었다. '살아 움직이는 인천 문화–인천 르네상스 운동을 제창한다’는 인천의 자원을 새롭게 해석해 도시의 재탄생을 도모하자고 제안했으며, 이는 시민에게 비판 정신과 창조성을 불어넣는 생활 문화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또 다른 발표인 ‘새로운 세기, 인천 문화 발전의 실천 방략–문화재단과 시민 축제를 중심으로’는 문화재단 설립과 시민 축제 모델 구성을 제안했으며, 이는 인천 문화정책의 핵심 기능을 맡을 전문가 그룹의 필요성과 함께, 시민이 주체가 되는 축제를 통해 도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이러한 발제들은 이후 실제 정책으로 이어져 2004년에 인천문화재단이 설립되었고, 시민 축제는 지역문화를 지탱하는 중요한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울러 토론회 직후에 인천시와 준비위원회는 1박 2일간의 워크숍을 열어 중점 실천 과제를 선정했다. 이는 토론회에서 제기된 제안이 담론에 어무르지 않고 실제 실행 단계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였다. 그리고 토론회의 전 과정을 정리해 2000년 1월에 『왜 다시 인천인가: 인천·삶 그리고 대안』(다인아트)이라는 책으로 발간하였다. 행사 내용을 묶어 토론의 성과를 시민사회 전체와 공유하고, 이후 세대가 참고할 수 있도록 공적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 기록의 의미는 매우 컸다. 토론회에서 생산된 담론을 문서화함으로써 정책적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천문화재단 설립과 같은 후속 정책은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었고, 시민과 전문가가 나눈 논의가 현장에서 흩어지는 구두 발언으로 끝나지 않고 도시 거버넌스의 자산으로 축적되었다.


다시 말해, ‘새천년 인천의 희망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는 토론–기록–공유–정책화라는 선순환 구조를 구현한 드문 사례였다. 그리고 이 경험은 오늘날에도 여러모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현재 인천은 다층적 전환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문화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정책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시민 참여가 부족하거나 갈등 조정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1999년에 개최된 시민 대토론회는 정책의 정당성과 지속성이 시민의 동의와 참여에서 비롯된다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행정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쉽게 반발과 저항에 부딪히지만,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논의하고 합의한 의제는 시간이 지나도 힘과 설득력을 유지하게 된다.


또한 당시에 시도된 사이버 토론은 현재 인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 행정 및 디지털 플랫폼 구축 사업과 연계해서 다시 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기술 도입이 아니라 시민이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인천은 이미 25년 전에 온라인 공론장을 실험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 선구적인 시도를 오늘의 기술 환경 속에서 재해석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인천은 디지털 민주주의의 실질적 모델을 구현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10월에 개최된 ‘새천년 인천의 희망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인천·삶 그리고 대안은 도시 거버넌스의 모범적 실험이자, 시민 담론을 공적 자산으로 전환한 보기 드문 사례였다. 오늘의 인천이 다시 도약을 준비한다면, 당시의 실험을 역사적 일화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현재적 과제로 재구성해야 한다. 토론과 합의, 기록과 공유, 정책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바로 인천이 앞으로도 지켜가야 할 민주적 거버넌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478_673_234.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역의 문화를 바꾸는 골목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