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역문화’는 없다

문체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에 ‘지역문화’는 없다

by 손동혁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켰다. 90명의 위원이 위촉되고 문학, 연극·뮤지컬, 클래식 음악·국악·무용, 미술, 대중음악, 영화·영상, 게임, 웹툰·애니메이션, 출판 등 9개 분과가 구성되었다. 한국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창작자와 산업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만큼, 정부가 문화예술 현장의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위원회는 실질적 정책 논의를 위해 분과별 수시 회의 형태로 운영되며, 창작 기반 강화, 청년 예술인 지원, 문화창조산업 생태계 토대 확립 등 다양한 의제를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560_785_1810.png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누리집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한국 문화정책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구조적 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도 드러낸다. 한국의 문화정책은 줄곧 예술을 장르별로 구분하고, 그 장르를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해 왔다. 이 틀 안에서 지역은 ‘보조적 영역’이나 ‘행정이 따로 처리하는 과제’로 밀려났고, 그 결과 지역 예술 생태계의 붕괴, 지역 예술인의 열악한 노동환경, 수도권 편중 예산 구조, 문화자치의 후퇴와 같은 중요한 현안들이 국가 문화정책의 중심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되어 왔다. 이번 자문위원회의 구성 또한 이러한 오래된 관행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작금의 문화 현실이 이미 이러한 틀을 넘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문화는 특정 분야의 진흥을 넘어 삶·공동체·장소성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으며, 지역의 문화 인프라가 해체되고 비수도권 청년 예술인들이 생계를 위해 지역을 떠나는 현상, 생활문화·문화도시·지역관광 등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환경은 장르 중심의 자문 구조로는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 문화의 실제 현장은 장르보다 오히려 지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위원회 구성에는 정작 지역이 통째로 빠져 있다.


이 같은 구성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먼저 정책의 대표성이 크게 떨어진다. 90명의 자문위원이 참여하고 있으나 지역 기반 창작자, 기획자, 연구자의 목소리는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한국 문화는 수도권의 대규모 산업만이 아니라 지역의 공연장, 공동체 문화공간, 소규모 기획자, 지역문화재단, 지역 예술인의 다양한 활동이 함께 구성한다. 이들의 현실이 정책 논의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문화정책의 불균형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국정과제와의 괴리도 발생한다. 정부는 균형발전과 지역문화 활성화를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있지만, 장관 직속 자문구조에서 지역문화 관련 논의가 체계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목표는 선언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는 대표성, 정책 일관성을 흔드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문화정책이 예술 진흥이라는 좁은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의 삶과 지역, 문화적 권리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문화자치·문화도시를 포괄하는 분과를 신설해 지역 의제를 공식적인 논의 구조로 포함시키고, 위원 구성 또한 지역 기반 창작자·기획자·연구자 등 다양한 주체로 넓혀 대표성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자문회의의 의제 설정 과정, 회의록, 자문안의 정책 반영 여부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자문기구의 책임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장르별 전문가들의 의견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 문화정책의 미래를 온전히 설계할 수 없다. 문화는 언제나 장르보다 넓고 산업보다 깊으며, 행정이 설정한 범주보다 훨씬 유동적이다. 문화정책이 다루어야 할 대상은 결국 사람, 장소, 기억, 삶이다. 그렇다면 정책자문 구조 역시 이 넓은 스펙트럼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 문체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출범 보도자료

https://www.mcst.go.kr/site/s_notice/press/pressView.jsp?pSeq=22111&pMenuCD=0302010000&pCurrentPage=2&pAction=&pCntPerPage=10&pTypeDept=&pSearchType=01&pSearchWor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천에 다시 시민회관이 필요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