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 설치제도-선택적 기금 제도의 모순
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 설치 제도는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인 일정 용도의 건축물을 건축할 때 건축비의 일정 비율(대통령령으로 정한 1% 이하)을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규정한 제도다. 또한 건축주가 직접 작품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설치비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을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할 수 있도록 한 선택적 기금제가 2011년 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회화, 조각, 공예 등 시각예술을 건축물에 도입해 문화적·미적 가치를 높이려는 취지에서 마련되었으며, 문화예술 진흥과 도시 환경 개선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건축물에 문화적 이미지를 더함으로써 지역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고, 예술가의 창작 기반을 강화하며,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촉진하는 등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다층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선택적 기금제로 조성된 재원은 공공미술 진흥 사업에 활용되어 시민들이 공공미술을 접하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현재 선택적 기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관리하는 중앙기금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제도 설계의 취지인 '지역 문화경관 개선'과 크게 어긋난다. 지역에서 조성된 재원이 지역으로 환원되지 않은 채 중앙에서 일괄 배분되는 구조 속에서, 해당 지역은 스스로 문화환경을 개선할 권한과 책임을 잃고 있다.
선택적 기금은 지역 환원을 전제로 설계된 재원이다. 설치 의무를 면제받는 대신 건축주가 부담한 비용을 지역의 공공미술, 경관 개선, 생활권 문화환경 조성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제도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부담이 지역에서 발생한 만큼 혜택도 지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공공 재원 운용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다른 지역 사업에 선택적 기금을 사용하는 것은 형평성과 정당성 양쪽 모두에서 문제가 있다.
이 제도를 제자리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취지를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선택적 기금이 지역 환경 개선을 위한 대체 부담금으로 마련된 만큼, 재원의 귀속과 활용 범위를 '해당 지역 사용'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지자체가 계획 수립과 집행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정보공개와 주민 참여를 확대해 제도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도 높일 필요가 있다.
특히 선택적 기금을 공공미술 사업에만 한정하지 않고, 지역문화 전반의 진흥을 위한 재원으로 확장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문화예술 교육, 생활문화 프로그램, 지역문화 기록·아카이브 구축, 문화공간 운영·활성화 등 다양한 분야에 선택적 기금을 연계한다면, 지역의 문화생태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의무를 대신하는 부담금이라는 성격은 유지하되, 그 활용 범위를 지역의 문화적 기반을 넓히는 방향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애초에 선택적 기금은 지역을 위해 마련된 재원이다. 이 기금을 지역에 환원하고 지역문화 전반의 기반을 강화하는 데 적극 활용하는 것은 제도의 본래 목적을 되살리는 동시에 지역문화의 자생력을 키우는 하나의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