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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론 Mar 02. 2021

고양이에게 안겨본 적 있나요?

우리는 함께하며 서로를 닮는다. 이 얼마나 눈물 찡하게 아름다운 말인지.

얼마 전, 짧은 혼자 여행을 마치고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종일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비행기를 타고 내리느라 몸이 많이 지쳐있었다. 그런 밤에는 잠자리에 누우면 침대 안의 블랙홀 같은 공간이 나타나 내 몸을 쑤욱- 하고 끌어당기는 것만 같다. 이번 여행이 어땠는지 회상할 겨를도 없이 잠이 나를 덮쳐 올 무렵, 내 곁으로 다가온 요미가 몸을 기대고 무릎 위에 턱을 살포시 올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쿠키도 어느새 내 왼쪽 옆구리에 자리를 차지했네.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게 느껴졌다. 좋은 여행이였지만, 혼자는 역시 좀 외로웠나봐. 두 고양이의 체온이 나를 위로하는 걸 느끼며 잠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요미도 쿠키도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같은 스킨쉽을 하게 된걸까. 쿠키야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스킨쉽에 능숙(?)한 편은 아니었다. 아깽이(아기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마의 3개월 차부터 고양이의 스킨쉽은 귀엽다기보다 괴로운 구간으로 진입한다는 걸. 그 맘때는 퇴근하고 돌아와 잠드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 쿠키가 어찌나 나를 깨워대던지…. 어깨를 툭툭치며 “이보시게, 좀 일어나보게.” 했다면 좀 괜찮았을까.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고, 배를 밟고 지나가고… 특히 뒤척이다 이불 사이로 삐져나온 발을 꽉! 물 때는 악몽이라도 꾼 사람처럼 악! 하고 벌떡 일어나야 했다. 


반면 요미는 뭐랄까, 딱 고양이다운 스킨쉽을 딱 고양이답게 원했다. 내가 먼저 가까이 다가갈 땐 썩 달가워 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원할 때 내가 쓰다듬어주지 않으면 야옹 야옹 울면서 정확한 의사 표현을 했다. 안는 건 싫어했고(여전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머리와 턱을 쓰다듬어 주는 걸 원했다. 짧으면 5분, 길면 10분 정도 열심히 쓰다듬어드리면 만족하고 돌아갔다. 나는 더 만지고, 더 같이 있고 싶은데….


어디선가 고양이는 원래 야옹 야옹 울지 않는다고 들었다. 물론 그건 개묘차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고양이는 먀- 먀- 울고, 어떤 고양이는 웅앵요- 웅앵요- 울고, 어떤 고양이는 히양- 히양- 우니까. 한 고양이가 때에 따라 여러가지 소리를 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고양이들끼리는 울음소리로 소통하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인간이 내는 소리에 맞춰 대답을 하거나, 인간이 울음소리에 반응을 잘 하니까 거기에 맞춰 변화한 거란 말이다. 그러고보니 길냥이들끼리 야옹거리면서 얘기하는 건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발정기 때의 울음소리나 싸우기 위해 내는 하악질 정도라면 모를까. 



하지만 인간(나)과 함께 10년 쯤 산 고양이(요미와 쿠키)는 인간처럼 스킨쉽을 한다는 건 사람들이 모를 것 같다. 평소보다 늦게 자는 주말이면 늦게까지 같이 뒹굴거리는데, 그럴 때 쿠키는 내 팔베게를 베고 눕는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팔(앞발)을 뻗어 내 얼굴을 만진다. 정확히 몇년 전부터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처음엔 정말 놀랐다. 우연이였겠지! 지금은 익숙해져서 미리 발톱을 잘 잘라둔다. 잘라주지 않으면 따갑다….


요미는 내가 서 있는 걸 싫어해서 주로 어딘가에 앉아 있거나 누워있을 때 다가온다. 특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느라 오랜시간 미동하지 않으면 가까이 와서 나를 지켜보다가 가만히 끌어안는다. 어떻게 고양이가 사람을 안느냐고? 물론 고양이는 작으니까 나를 다 안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옆에 누워서 앞발을 쭉 내밀고 허벅지나 허리를 안을 수는 있다. 흘러내린 것처럼 반은 내 위에 반은 침대에 걸쳐져서 마치 나무기둥 끌어안듯이 두 팔로 나를 끌어 안을 때도 있다. 



어떻게 이런 스킨쉽을 할 수 있게 된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하는 행동을 조금씩 따라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일 수도 있겠지. 결국은 인간도 고양이도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맞춰지고 서로를 배워가는가보다. 그리고 그게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믿는다. 고양이에 비하면 같이 산지 얼마 안 된 반려 인간(=남편)이 합류하고 나니 더더욱 그렇게 느낀다. 가끔은 쿠키와 남편이 똑같은 자세로 낮잠을 자는 걸 목격하거든…. 우리는 함께하며 서로를 닮는다. 이 얼마나 눈물 찡하게 아름다운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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