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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론 Feb 24. 2021

우리의 묘연은 우연이 아니야

이 작은 것이 길에서 겨울을 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첫째 요미와 둘째 쿠키에 이어, 우리 집에는 셋째 고양이가 있다. 셋째 고양이 이름은 토끼. 고양이에게 가장 고양이답지 않은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내 동생의 욕망에 따라 독특한 이름을 가지게 됐다. 나는 동그리의 ‘그리’를 밀었는데, 고양이는 별 반응이 없었고 인간들에게 ‘MC 그리’냐며 핀잔만 들었다. 


토끼도 요미나 쿠키와 마찬가지로 길에서 만난 길냥이지만, 외모는 코숏(코리안 숏헤어. 한국 길냥이들 품종을 이렇게 부른다)과 거리가 멀다. 다리가 짧고 얼굴이 똥그랗다. 똥그란 얼굴에 비해 눈이 크고 귀가 작은 편이다. 스코티시 스트레이트 품종과 코리안 숏헤어가 섞인 걸까? 어떤 병원에서는 일본쪽 품종인 것 같다고도 했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이 매력적인 외모인 건 분명하다. 게다가 3색 냥이라는 유니크함까지 더해져서, 토끼를 보고 첫눈에 “예쁘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은 아직 본적 없을 정도니까. 



미모로 치면 요미와 쿠키를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토끼이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같이 살고 있지는 않다. 그럼 어디 있느냐고? 놀랍게도… 도님(남편의 애칭이다)의 부모님 댁에서 살고 있다. 조금 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 나는 사실 토끼가 도님의 부모님 댁에 가서 살기 위해 내 손에 냥줍됐다고 믿는다. 그 집에 가기 위해 나를 선택했던 것이라고.


사실 토끼를 만났던 것도 도님의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동네, 광진구 자양동에서였다. 그때 우리는 결혼하기 전이었지만 연애를 시작할 무렵부터 도님 부모님댁에 종종 놀러가 맛있는 음식과 술을 얻어먹곤 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전철 놓치겠다 싶을 정도로 다소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얘길 하다가, 나를 데려다주겠다는 도님과 함께 집을 나섰다. 봄이 올까말까하는 싸늘한 날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파트 입구를 나오는데 화단에 웬 고양이 한마리가 눈에 띄었다. 


“야옹아~” 불렀더니 알은 채를 하면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눈을 반짝 빛내더니 양쪽 다리에 귀엽게 부비는 것 아닌가! 몸을 숙여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고릉고릉 소리를 내며 내 손에 자기 몸을 맡겼다. 고양이 집사계(?)에는 그런 말이 있다. 냥줍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고…. 그 순간 느낌이 왔다. 얘는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아!



흔치 않은 미묘를 만난데다 술기운도 있겠다. 이 아이를 데려가자고 우리는 3초만에 합의를 봤다. 그런데 어떻게 데려가지? 캐리어도 없는데…. 캐리어 비슷하게 네모난 것이면 어떨까 싶어서 종이 상자를 구해왔다. 그런데 고양이를 안아 올려 상자에 넣으려 하자 깜짝 놀라 윗부분을 뚫고(?) 도망가버렸다. 이를 어쩌지. 한번 놀라게 했으니 이제 근처에도 안 오겠구나. 그런 생각에 시무룩해져서 상자를 정리하고 있는데, 그새 또 주변에 와서 알짱대는 것이 아닌가.


약간은 마음을 접은 채로 예쁜 고양이 얼굴이나 좀 더 구경하자 싶어 걸음을 맞춰 약간 천천히 걸었다. 고양이는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앙앙 거렸다. 보통 고양이 성량의 3분의 1정도로 작고 새된 울음 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또 귀여워서 자꾸만 말을 걸었더니 갑자기 인도 옆에 있는 수돗가로 가서 우리를 불렀다. 수도꼭지 입구에 입을 살짝 대더니 우리를 쳐다보는 게 마치 목 마르다는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에이, 그럴리가. 반신반의하며 물을 살짝 틀어주었더니… 정말로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와아, 예쁘기만 한게 천재 고양이잖아?



결국 그날 토끼는 내 품에 안겨서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얌전히 폭 안겨 있을 줄 알았으면 괜히 상자에 넣겠다고 난리를 쳤네. 난생 처음 차를 타고선 창 밖의 풍경에 넋이 나가있는 낯선 고양이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삼색이라 지저분한 티가 안나긴 했지만 조그만 솜방망이가 잿빛이고 발톱은 갈라져있었다. 이 작은 것이 길에서 겨울을 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다. 집에 가면 동생이 또 고양이를 줏어왔냐며 기겁하겠지만, 얘는 예뻐서 괜찮을거야. 토끼가 우리 집에 반년도 못 있다가 다시 자양동으로, 자기가 처음부터 원했던 자양동의 ‘그 집’으로 갈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한 채로. 그때는 그런 감상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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