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변화 앞에선 누구나 자기 자신을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랜 고민과 준비 끝에 9년을 다닌 회사에서 퇴사했던 날, 아쉬운 마음보다 신나는 마음이 컸었다. ‘이제 여기 다시 올 일 없겠구나’하는 식의 감상도 없었다.
퇴사 후 첫 달은 마치 긴 휴가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쌓아뒀던 책도 읽고 미루던 운동도 했다. 조향 공부도 하고 카페에 나가 글도 썼다. 열심히 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내가 늘 꿈꿔오던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된 걸 즐겼다. 핫하다는 카페에서 평일 오후 한적함을 누렸다. 플랫화이트 한 모금에 한 문장, 두 모금에 두 문장. 쓰는 기분만 내면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면 기분이 붕 뜨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날 둘러싼 풍경은 한창 봄이었다. 날씨도 어쩜 이렇게 좋아? 들숨에 평온, 날숨에 행복!
하지만 그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퇴사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나. 여름이 시작되고, 습도가 올라가고, 모기가 날아다니고…, 갑자기 불안해졌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던 나는 사회인이 된 후 한 번도 경제활동을 멈춘 적이 없었다. 통장에는 아직 퇴직금 이 남아 있고, 이제껏 모아둔 돈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도 못 했다. 잔고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흔들릴 거라곤.
몸은 자유로워졌는데 여전히 반복해오던 직장인의 일정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도 문제였다. 아홉 시가 넘어서 눈을 뜨는 날이면 일어나기도 전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 지금쯤이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건데.’ ‘회사 다닐 때보다 생산적이지 못한 것 같아.’ 그러다가 퇴근 시간이 지나면 (나는 퇴근이 없는 사람인데도!) 하던 일을 슬슬 마무리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시간 내에 일을 끝내지 못했다는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회사 밖에서 살기로 했으면서도 내 삶을 자꾸만 회사 다닐 때의 출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재단했다.
당시 내가 하고 있던 일들이 퇴사 전의 업무와 무척 다르다는 것도 압박감에 한몫했다. 글 쓰는 일 외에도, 새로운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조향을 배워오다가, 직접 만든 향기를 세상에 꺼내놓고 싶어서 첫 향수를 제작하고 있던 참이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말이다. 늘 익숙한 일만 해오던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속도감 있게 일을 척척 해내던 9년 차 직원이었는데 갑자기 애송이가 됐다. 어떤 날은 며칠간 몰두했던 공정이 도로 아미타불이 되기도 했다. 자꾸 실패하고 실수하고 버벅대는 나를 받아들여주고 싶지도, 인정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자 한여름이 됐을 무렵에는 완전히 무기력해졌다. 자꾸 숨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달래보기도 하고, ‘아침 루틴’ 같은 걸 만들어 애써 힘내보려고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잠에서 깨면 눈물부터 나는 날도 있었다. 씻고 나갈 준비를 하다가도 이불 속으로 숨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삶인데,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다니….
수화기 건너 목소리가 날로 안 좋아지자 엄마도 낌새를 챘는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대꾸해 오다가 어느 날 최대한 밝은 톤으로 슬며시 말을 꺼냈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자꾸만 직장인이던 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한다고. 매월 들어오는 월급이 없으니 불안하다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해야 하는 것도 많은데, 압박감에 점점 움직이기 힘들어진다고.
“좋으려고 회사 나온 건데 말이야. 왜 이러나 몰라. 그치? 바보 같지?”
잠자코 그 말들을 듣고 있던 엄마가 답을 했다.
“뭐가 바보 같아! 넌 지금 직장인의 때를 벗고 있는 거야.”
그 말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때는 무슨 때야! 그럼 이전에는 때가 묻어 있었다는 거야!?”
깔깔깔. 엄마도 따라 웃었다. 그게 아니라, 그곳에서 이곳으로 넘어왔지만 아직 과거의 내가 묻어 있다는 뜻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로부터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놀랍게도 많은 것이 변했다. 동시에 세 가지 일(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조향사)을 나름대로 균형감 있게 진행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밤에는 다음 주 일정을 정리하고, 매일 아침 그날 할 일을 체크한다. 정해진 기상 시간은 없다. 그날그날 일정에 맞춰 깨고, 일하고, 논다. 어떤 날에는 새벽 여섯 시 반에 깨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어떤 날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외부 일정을 연달아 세 개를 소화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느즈막이 일어나서 집을 정리하고 밤 열 시까지 여유롭게 일을 할 때도 있다. 아직도 적응 중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직장인으로 살아왔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그렇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 않았을 텐데. 엄마가 말했던 “때를 벗는다”는 표현은 동물이나 곤충으로 치면 탈피 혹은 변태 같은 것이었으리라. 나비도 고치를 찢고 나온 후에 바로 날지 않는다. 날개가 마를 때까지, 새로운 몸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했다. 그건 오히려 나를 더 압박하고 불안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크고 작은 변화 앞에선 누구나 자기 자신을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퇴사라는 큰 사건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일들을 겪을 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를 줄이는 것도, 서툰 나 자신을 눈감아주는 것도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가 해준 말을 읊조리며 피식 웃어본다. 그래, 나는 지금 과거의 때를 벗고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