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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론 Oct 28. 2020

재빠르게 나를 용서할 줄 아는 용기

미움 받을 용기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용기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급하게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헉! 어제 계획했던 것보다 1시간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아, 분명 첫 번째 알람은 들은 것 같은데. 왜 지금까지 잔거지? 일어나자마자 원고를 쓰려고 했던 계획은 이미 어그러져버렸고, 점심 약속까지는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있었다. 하루의 시작을 이렇게 망쳐버린 나 자신 대한 짜증이 이불 위로 스물스물 덮쳐온다. 


‘지난주에도 이런 식으로 오전을 버렸잖아. 왜 이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야. 며칠 전에는 제 시간에 눈을 떠놓고, SNS를 들여다보느라 40분이나 시간을 버린 적도 있었지. 나 좀 심각한 거 아닌가?’ 


분노를 머금은 이불이 점점 무거워진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대신 그대로 누워서 스스로를 비난한다. 약속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나갈 준비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까지.


사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용기, 바로 스스로를 재빠르게 용서하는 용기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 혹은 잘못을 한다는 걸, 다들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잘못이나 실수를 했을 때는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러이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물며 그 잘못이 자꾸 반복되는 것이라면?


스스로에게 저주를 거는 멍청한 마법사가 되지 않으려면, 일단은 ‘그럴 수 있다’고 용서해줄 줄 알아야 한다. 나 또한 인간일 뿐이라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용서하고 인정하는 일이 빠를수록 그 실수를 ‘넘기는 일’도 빨리 이뤄질 수 있다. 그게 늦어지면 잘못한 일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화내고 있는 자기 자신의 감정에 묶이기 쉽다. 그때가 되면 무엇을 실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진다. 그저 자책을 거듭하며 남은 시간까지 망쳐버릴 뿐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남편과 내가 다툴 때 함께 지키는 철칙이 있다. 이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 언급하며 싸우지 않을 것. (물론 어떤 것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다면, 그 이야기는 나올 수 있겠다.) 


“너는 ○○도 했잖아”, “네가 지난번에 ○○했던 건 기억 안나?” 하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싸움이 번지는 걸 조심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나 자신을 자책할 때는 그 법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원고 마감에 늦었다는 자책은 못 다한 설거지와 집안일로, 몇 번 빼먹은 운동으로, 결국에는 나 자신의 성격과 성향에 대한 힐난으로 향한다. 


누군가 타인이 나를 그런 식으로 몰아세운다면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반박했을 텐데….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과 다툴 때는 화해하기 위해 대화를 풀어나가려 노력하면서, 왜 스스로에게는 그게 어려울까? 


실수나 잘못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자책과 셀프 분노를 깨달은 이후에는 무조건 ‘일단 용서 타임’을 가지려고 한다. 내가 저지른 일에 화가 너무 치밀어 오른다고 해도 지금은 일단 넘어가고, 이 사태를 해결한 후에 시간을 갖고 생각하기로(내 경우에는 일기를 쓰며 생각하기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기를 쓸 때쯤이 되면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뒀다면 두세 시간은 사로잡혔을 기분인데, 이렇게 간단히 사라져버린다니!


얼마 전 디자이너 친구가 SNS에 다이어리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올렸다. 


“너무 한 게 없어 자책을 했던 한주였는데 돌이켜보니 아예 아무 것도 안 한 것도 아니고, 마음을 다독다독했던 일주일이었네. 역시 산도 오르고 나서 뒤돌아봐야 내가 얼마나 높이 올라온 줄 안다고 모든 일이 그렇지. 자책하기보다 나 자신을 응원하고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하기!”


회사를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도 두 개씩이나 하고 취미 생활도 다양하게 하는데다, 늘상 웃는 얼굴에 워낙 에너지 넘치는 친구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오밀조밀 무언가 잔뜩 적혀있는 그녀의 다이어리가 마치 빽빽한 내 일기장 같아 동질감이 느껴졌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누구나 비슷한 과정을 겪는구나 싶었다. 


서툴고 조금은 엉망일 때도 있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일어서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니 이런저런 실수와 잘못으로 넘어진 나 자신을 조금 더 쉽게 용서해줘도 괜찮겠지 않을까? 


어쩌면 미움 받을 용기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스스로가 재빠르게 내민 손을 잡고 씩씩하게 툭툭 일어서야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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