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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론 Jan 19. 2021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씩

아무리 급하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누구나 한 번에 한 가지만 해낼 수 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네.”

인터넷 게시판에서였나? 이 말을 처음 봤었을 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온갖 걱정을 싸매고 앉아있을 때의 내가 불현듯 떠올라서. (이 글을 쓰려고 검색해보니 심지어 동명의 책도 나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걱정은 안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나는 보통 12시에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눕자마자 쉽게 잠드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새벽 서너 시까지 뒤척이곤 한다. 그럴 때는 열이면 열,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잠들기 위해 엄청 노력한다. 계속 실패할 뿐이다. ’이제 그만해야지. 자자. 자야지.’ (5초 경과) ‘근데….’


걱정이란 주로 미래의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일들, 아주 아주 먼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까지 모두 걱정에 포함된다. 특히 회사를 벗어나 1인 기업을 꾸리면서 이런 걱정들에 잠식되는 날이 더 빈번해졌다. 답은 모르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눈을 감고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당연히 걸음을 내딛기가 어려워진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다음 걸음을 상상하게 된다. 

‘내 앞에 있는 게 물웅덩이면 어떻게 하지?, 늪이면 어떻게 하지?, 내리막길이거나 암벽이면?’ 

물론 이것은 과한 걱정일 것이 뻔하다. 평지를 걷고 있었다면 바로 다음 걸음에 갑자기 물웅덩이나 암벽이 나타날 일은 희박할 테니까 말이다. 


걱정이나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정말 좋겠지만
우리 뇌는 그렇게 배선되지 않았다.
계획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며 의사를 결정하도록 돕는 회로들이
우리를 걱정으로 몰아가는 바로 그 회로들이다.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회로들은 불안을 야기하는 회로들과 동일하다.


신경과학자 엘릭스 코브가 쓴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엘릭스 코브의 말대로 걱정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껏 걱정들이 나를 신중하게 만들어줬다.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하게 했고,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나의 문제는 걱정 자체라기보다, ‘너무 많은 걱정’을 ‘한꺼번’에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브레이크 문구를 만들어냈다. 걱정이 현재를 앞질러 너무 미래로 갈 때, 오만가지 걱정이 한꺼번에 나를 덮칠 때, 입 밖으로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되뇌인다.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씩.”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 그 단 한가지만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는 딱 그만큼이니까. 아마도 『우울할 땐 뇌과학』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내 브레이크 문구와 일맥상통하는 의미일 테다. 


걱정과 불안은 자신을 미래에 투사하는 일이므로
 현재에 완전히 몰두하면 걱정과 불안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 된다.
그러니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자.
만약 실제로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에 대처하고
 그것이 표면 아래에서 부글거리는 불안일 뿐이라면 그 사실을 인지한 뒤
다음으로 넘어가자. 초점을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로 옮기자.


물론 브레이크 문구가 있다 해도 여전히 걱정에 휘둘리는 일은 빈번하다. 이 책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예상보다 원고 쓰는 속도가 느려서, 아직 써야할 글이 꽤 남은 상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글을 쓰는 일’이다. 하지만 불쑥불쑥 걱정들이 치밀고 들어온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미리 정해둔 가제와 똑같거나 아주 비슷한 책이 먼저 나오면 어쩌지? (크리에이티브한 걱정이다.) 출판 시장의 흐름이 확 바뀌어 버리면 어쩌지? (출판 시장은 봄날씨가 아니다.) 전체 원고 마감 전에 내가 아파서 입원하면 어쩌지? (…) 


그러다보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혹은 하다가 말고, 갑자기 검색을 시작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는 어떤 분이 좋을지, 여기저기 들여다본다. ‘이 그림도 좋고 저 그림도 좋아 보이는데  이 작가님이 나와 함께 해주실까? 이 그림이 내 글과 잘 어울릴까?’ 이렇게 고민하다가 허송 세월을 보낸다. 


아니면 최근 잘 팔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이 어떤 것들인지 찾아보기도 한다. 나랑 너무 다른 주제와 결을 가진 것 같으면 ‘사람들이 이제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나랑 너무 다른데 어쩌지?’ 나랑 너무 비슷한 주제와 결을 가진 것 같으면 ‘내 책이랑 너무 닮았잖아! 사람들이 똑같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답도 없는 걱정들이 새록새록 솟아나 글을 쓸 마음이 안 생긴다. 


하지만 그 어떤 걱정도 해결점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다음 글을 쓰는 일’일 뿐이다. 다음 글을 쓰지 않으면 그다음 글도 쓸 수 없고, 그럼 원고 마감도 할 수 없고, 결국 책도 나올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다시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씩”을 주문처럼 되뇔 수밖에. 아무리 급하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누구나 한 번에 한 가지만 해낼 수 있다. 혹여 나처럼 산만한 걱정의 무리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해주고 싶다. 이제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발끝을 보자고. 다음 걸음을 가장 멋지게, 가장 잘 내딛는 것이, 언제나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이니까.




Illust by 코피루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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