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덜 깎아내리고 더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얼마 전에 본 영상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솔로로 활동하던 가수 선미가 <문명 특급>이라는 웹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반인(연예인+일반인의 합성어) 재재와 인터뷰를 하는 영상이었다. 알고 보니 선미는 ‘원더걸스’로 활동하던 때부터 작사•작곡에 참여했고, 이제는 본인의 곡을 직접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무대와 의상 등 전반적인 앨범의 방향까지 프로듀싱하는 능력까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다재다능했다.
“이걸 대대적으로, 대문짝만하게 알려야죠! 천재야, 천재”라고 칭찬하는 재재의 말에 선미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재재는 선미가 파리에 있는 디자이너와 영감을 주고받으며 무대 의상을 함께 기획하는 능력에 대해서도 칭찬했는데 대답은 똑같았다. “아니에요.”
반복되는 “아니에요” 반응에 재재는 “사실인데 왜 자꾸 아니라고 그러시냐”며 답답해했다. 선미는 안 그래도 그게 고민이라고 했다.
“그럼 ‘아니에요’를 하면 안 돼요! ‘맞아요. 아니까 그만 좀 말하세요’라고 하셔야죠!”
장난스런 재재의 대답에 깔깔 웃는 선미를 보며 나도 함께 웃었지만, 가슴 한 켠에는 뭔가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20대 초반에 나도 선미와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면 손사래부터 치고 몸 둘 바를 몰랐으니까. 칭찬이란 나를 높이 평가하는 말인데, 오히려 칭찬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은 나의 장점을 칭찬하며 치켜세우고, 나는 그게 아니라며 깎아내리는 이상한(?) 장면이 연출될 때도 있었다.
“피부가 정말 희고 고와요!”라는 말에 “아니에요. 화장 지우면 별로예요. 그래서 조그마한 트러블만 생겨도 금방 눈에 띄고, 홍조도 심해요”라면서 되려 단점을 나열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대답 때문에 칭찬해준 사람도 민망했을 것 같다.
그래서 직장인이 되면서 결심했다. 누군가의 칭찬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주간지 에디터는 새로운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그래서 가벼운 칭찬을 섞은 스몰토크를 할 일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나를 깎아내리고 싶지 않았다. 칭찬은 순순히 받되, 그만큼의 칭찬을 상대방에게도 돌려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칭찬 앞에서 “아니에요”가 아니라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할 줄 알아야 했다. 언제든 칭찬을 돌려줄 수 있게 상대방의 좋은 점을 단번에 찾아두는 명민한 눈도.
에디터 생활을 하면서 칭찬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 선미의 고민에 ‘또’ 찔렸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이 보였다. 내가 받아들이는 칭찬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로 외형적인 것, 스몰토크에 나올 법한 가벼운 칭찬의 말에는 “감사해요”라는 대답이 쉽게 나왔다. 피부, 목소리, 이름, 그날 입은 옷이나 들고 나간 가방, 취향이 드러나는 만남의 장소 선택 등. 하지만 다른 칭찬의 말 앞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일이나 능력에 관한 칭찬에 대해선 더 심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하는 부분을 언급하며 칭찬할 때, 나의 향수 브랜드 ‘아로’의 성장세를 눈여겨보고 칭찬할 때, N잡러로서 일상을 꾸려가는 방식에 대해 칭찬할 때…, 여전히 내 입에서는 “아니에요”가 먼저 튀어나왔다.
“아니에요~. 세상에 글 잘 쓰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여전히 나를 깎아내리고 있다.)
“아니에요~. 열심히는 하는데 제대로 된 수입을 얻으려면 아직 멀었어요.” (칭찬한 포인트와 다른 전혀 쓸데없는 답변을 한다.)
“아니에요~. SNS에서나 그렇고 보이지 실제로는 엉망이에요.” (이렇게까지 고해성사할 필요는 없지 않나?)
나아진 줄 알았는데 착각하고 있는 거였어! 여전히 칭찬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잖아? 충격을 받고 친구들에게 토로했는데, 다들 조언해주기 보단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친구들 또한 칭찬받는 게 좋으면서도 막상 그 자리에선 부끄럽고 민망해서 아니라는 말부터 한다고 했다.
아무리 겸손이 미덕이라지만 자꾸 그렇게 대응하면, ‘겸손하고 좋은 사람이군’ 하는 긍정적 평가보다 자신감 없다는 느낌을 주거나 더는 칭찬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안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자기 최면처럼 그 말들이 내 무의식에 자리 잡을 수도 있을 테고.
그래서 더 이상 이러지 말자는 의미에서 친구들과 ‘아니에요 안 하기 운동’을 선포했다. 누군가 칭찬을 해줬을 때, 대답이 좀 느려지거나 버벅거려도 괜찮으니 “아니에요”라는 말만은 먼저 하지 않기로. 그리고 그걸 서로 공유하기로 했다. 어떤 칭찬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각자의 경험을 함께 공유하다 보면 어떤 답변이 좋을지 자연스레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이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아니에요 안 하기 운동’에 종지부를 찍어도 될 정도로 칭찬을 받아들이는 것에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쯤엔 스스로를 덜 깎아내리고 더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겠지. 그때까지는 손사래도 얼버무리기도 쓸데없는 고해성사나 나 자신 깎아내리기도, 칭찬하는 말에 “아니에요”라고 답하는 것도 모두 금지하는 걸로. 절대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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