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강 레테 3

by 성일만

오병이어(五餠二魚)


예수는 총 34가지 이적을 행했다. 첫 번째 이적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적 가운데는 죽은 자(나사로)를 살려낸 경우도 있었다. 이적이 행해질 때마다 추종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메시아의 출현에 목마른 민중들은 그에게 희망을 걸었다.

34개의 이적 가운데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4명의 성서 기자(記者)가 빠짐없이 적어둔 이적은 오병이어 단 하나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에드워드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대로다.

그들이 이 사건을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빠짐없이 다룬 기사가 있다면 기자들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보아서다. 한 사람이라도 놓쳤다면 그만큼 중요도는 떨어진다. 성서의 기자들은 내용을 사전에 의논하거나 조율하지 않았다.

성서의 기자들에 따라 어떤 이적은 건너뛰거나 대충 넘어가기도 했다. 반면 오병이어는 하나같이 자신들의 복음서에 적어두었다. 그들은 왜 이 사건에 그토록 큰 무게를 두었을까?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예수가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의 배고픈 사정을 딱하게 여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 그들 모두를 먹였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는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얘기다.

무리의 수에 비해 가진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5천 명 모두를 배불리 먹였다. 더구나 그들 모두 상당히 굶주린 상태였다. 성서학자들은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를 2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5천 명의 무리 가운데의 여자와 어린아이가 포함됐음을 감안하면(당시 유대에선 남자 어른만 계수에 포함했다. 여자와 어린아이는 인구를 셀 때 제외됐다) 예루살렘 주민의 절반 가까이나 거둬 먹인 셈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먹을 것이 무엇보다 중하다. 2천 년 전의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자주 굶주렸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떡이었다. 그러니 예수가 행한 이적의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을 것이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만으로 예루살렘 인구 절반을 배부르게 해주었다더라. 그를 만나면 배고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더라. 굶주린 사람들의 귀에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을 것이다. 군중들이 예수의 주변에 구름처럼 몰려든 이유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 사건 이후 예수의 침묵은 길어졌다.

예수가 사랑한 제자 요한은 네 명의 기자 가운데 오병이어 사건을 가장 상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육하원칙에 의해 언제(유월절 가까운 시기) 어디서(갈릴리 바다 건너편)까지 빠짐없이 적어두었다.

요한은 다른 기자들과 달리 떡의 용도에 주목했다. 예수의 떡이 단지 위장의 포만감을 주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요한은 그 떡을 “세상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떡 –요한복음 6:33”에 비유했다.

오병이어에 대해선 많은 추측이 있어 왔다. 그 가운데는 꽤 그럴듯한 주장도 있다. 가령 처음 누군가 예수의 설교를 듣고 감동해서 가지고 있던 떡과 물고기를 내놓았다. 그들 역시 배를 주린 상태로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설교에 은혜를 받아 자신의 떡과 물고기를 다른 굶주린 이들을 위해 베풀기로 했다. 그러자 음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자신의 것들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음식은 순식간에 모두가 나눠먹고도 남을 만큼 모였다. 나눔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적이었다. 이 해석은 감동적이긴 하지만 신앙적이진 않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예수의 위상을 높여주었지만 한편으론 그에게 과중한 부담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중들 사이엔 이런 풍문이 나돌았다.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메시아다.’

메시아를 직접 보려는 사람들이 예수 주변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오병이어 이후 예수가 보인 반응은 오히려 반전이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그를 따르는 무리가 늘어나자 예수는 그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숨어 버렸다. 더 이상 어떤 이적도 보여주지 않았다. 예수는 깊고 긴 침묵 속으로 자신을 빠트렸다.

오병이어는 네 명의 성서 기자들은 모두 기록한 이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를 기점으로 달라진 예수의 태도다. 마침내 그는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냐?”는 신학적 함의가 담긴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아들


유대는 로마제국의 압제 아래 있었다. 식민지 주민의 삶은 어디나 마찬가지로 피폐하기 마련이다. 식민지배가 미개함을 극복하게 만든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우리에 갇힌 원숭이에게 바나나 하나를 더 준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유대인들의 몸은 자유를 잃었고, 마음은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들은 오랜 동안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갈망해 왔다. 선지자 이사야 이후 칠백 동안 간직해온 소망이었다.

나라는 둘로 나뉘어졌고,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앗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로마로 지배자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들 가운데 로마가 가장 강력했다. 로마의 군사력에 대항하려면 다윗 같은 강력한 왕이 필요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여호와를 전쟁에 능한 신이라고 믿었다. 다윗은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편 24:7”고 노래했다. 그들의 신은 출애굽에서 가나안 정복에 이르는 동안 치른 숱한 전투에서 자신들을 지켜주었다.

유대인들은 하나의 신을 믿었지만 바알 신앙에도 곧잘 빠져 들었다. 바알이 비를 내리게 해주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안보는 여호와, 경제는 바알이었다. ‘전쟁의 신’ 여호와, ‘풍요의 신’ 바알로 신들의 능력을 구분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왕으로 삼으면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예수는 몰려든 무리를 피해 산으로 숨었다. 예수는 오히려 자신을 체포하러 온 자들에게 칼을 빼든 베드로를 나무랐다.

오병이어의 열광이 잠잠해졌을 무렵 제자들은 다시 먹거리 걱정으로 긍긍했다. 예수는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 16:9”며 그들을 나무랐다. 이 무렵 예수는 제자들의 입을 통해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제 슬슬 세상과 작별할 시각이 나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제자들이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먹고 마시는 것에 머물러 있었다. 예수가 왕이 된 다음 혹 높은 자리를 차지할 생각뿐이었다.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샤라 빌립보에 이르렀다. 독재자 헤롯 빌립이 로마황제 카이사르와 자신의 이름을 합성하여 지은 신도시였다. 가이샤라 빌립보에는 거대한 로마황제의 신전이 있었다.

로마의 속주민이라면 누구든 일 년에 한번 이상 그곳을 참배해야 했다. 가이샤라 빌립보의 헤롯 빌립은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의 동생이었다.

유대인은 누구나 일 년에 한 번 신전에 들러 “카이사르가 곧 주님입니다”고 고백해야 했다. 그렇게 하면 ’리벨루스‘로 불리던 1년 유효기간 증명서가 주어졌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리벨루스‘를 거부했다.

그로인해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신기하게도 로마의 채찍이 날카로워질수록 기독교인의 수는 늘어갔다. 오히려 392년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기독교는 순수를 잃어갔다.

때가 이르렀음을 안 예수는 초조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베드로가 스승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그가 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태복음 16:16.”

이 한 마디에 기독교의 핵심이 들어 있다. 기독교와 교회는 베드로의 이 말 위에 세워졌다. 예수가 제자들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이었다.

“내가 누구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간단한 질문과 답에 예수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예수는 그 자리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바위라는 의미)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6:19”고 선언했다.

성경 전체를 통해 교회라는 말이 여기서 처음 등장했다. 교회는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교회의 시작은 베드로의 이 말에서 비롯됐다. 그 출발은 마가의 작은 다락방이었다. 높은 담장과 뾰족한 첨탑으로 장식된 교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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