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12세기 유럽에는 ‘프레스터 존(Prester John)’ 전설이 있었다. 당시 유럽은 100년 가까이 십자군전쟁의 늪에 빠져 있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깊은 수렁이었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영웅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홀연히 나타나 이 잔혹한 전쟁을 끝내줄 영웅. 그러던 중 예루살렘의 동편 저 멀리 존(혹은 요한)이라는 이름의 기독교인 왕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존 왕이 언젠가 무슬림으로부터 예루살렘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유럽인 사이에 새벽안개처럼 스며들었다.
그는 자신의 나라에선 왕칸으로 불렸다. 실제로 그는 정교 계통의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인이었다. 테무친에게 왕칸은 아버지의 의형제였다. 초원의 관습에 따르면 테무친은 그의 조카다.
테무친은 케레이트의 왕칸을 찾아갔다. 그에게 부족한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어떤 어려움에 처했어도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 굳이 그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아서다.
테무친의 아버지는 과거 왕칸의 쿠데타를 도왔다. 프레스터 존은 테무친 집안에 은혜를 입은 셈이다. 둘은 의형제를 맺었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테무친을 양아들로 인정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기엔 테무친의 세력이 너무 보잘 것 없었다. 외교에선 언제나 실익이 우선이다.
테무친은 긴장된 마음으로 왕칸에게 담비 가죽을 내밀었다. 그가 선물을 받으면 테무친과의 관계를 인정하는 셈이다. 거부하면 공식적으로 두 사람은 남남이다.
강자의 이익은 언제든 보장된다. 약자는 강자의 처분에 따를 뿐이다. 몽골에선 특히 계약 관계를 중시했다. 유목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선물의 수용은 새로운 계약을 의미했다. 테무친과 왕칸이 새 계약을 맺느냐 여부는 선물을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었다.
다행히 왕칸은 선물을 받았다. 담비 가죽이나 새 조카는 그에게 필요 없었다. 다만 메르키트는 그의 신발 안으로 굴러들어온 뾰족한 돌이었다. 꺼내서 던져버려야 하는데 신발을 벗긴 귀찮았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도 않았다.
이참에 잘 알지 못하던 조카의 힘을 빌려 성가신 적을 없앨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을 게 없었다. 만약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테무친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거나 그들과 화해를 하면 된다.
왕칸은 자무카로 하여금 테무친을 돕게 했다. 테무친은 기뻐했다. 자무카는 그의 안다였다. 그와는 서로의 허리띠를 주고받은 사이다. 이는 몽골족에게 생명을 함께 나눈다는 증표였다.
전투는 예상보다 수월했다. 메르키트는 연합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메르키트 족은 자신의 고향인 시베리아 방면으로 달아났다. 테무친은 게르(천막)를 돌아다니며 아내 부르테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부르테는 메르키트 족과 함께 피난길에 올라있었다. 부르테는 멀리서 자신을 찾는 남편의 애절한 목소리를 들었다. 부부는 오랜 만에 다시 만났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테무친의 아내는 임신을 한 상태였다. 그녀와 테무친은 오래 떨어져 있었다. 태중의 아이는 테무친의 자식일 리 없었다.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테무친은 첫 아들의 이름을 조치라고 지었다. ‘손님’이라는 뜻이다. 서운함이 베여있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테무친은 조치와 다른 아들을 차별하진 않았다. 똑같이 대했지만 조치의 출생문제는 두고두고 테무친의 발목을 잡았다. 조치는 종종 아버지의 말을 거역했다. 조치는 나중에 동유럽 대초원에 자신만의 나라를 세웠다. 오늘 날 러시아로 불리는 킵차크 칸국이다.
테무친과 자무카는 승리를 자축했다. 그들은 사이좋게 같은 지역에 터를 잡았다. 부족을 합해 일종의 기업합병을 성사시켰다. 위험한 선택이었다. 우정은 나눌 수 있어도 권력은 그렇지 못했다. 자식과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이내 둘 사이에 갈등이 생겨났다. 권력은 우정을 흔들어 놓았다. 자무카는 흰 뼈 가문이다. 사냥꾼 가문의 검은 뼈 테무친과는 급이 달랐다. 묘하게도 부족민들 사이에 인기는 테무친이 더 높았다. 그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
자무카는 테무친을 시기했다. 자신보다 우월한 테무친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무카쪽에서 먼저 이별을 통보했다. 말과 소는 그대로 남겨두고 따로 야영지를 만들라고 명했다. 빈손으로 떠나가라는 싸늘한 작별인사였다.
19세 소년 족장은 다시 홀로서기를 했다. 자신의 가축을 몰고 밤중에 야영지를 떠났다. 자무카는 추격해 오지 않았다. 이 순간부터 이 두 친구는 적으로 돌변했다. 이들 안다는 이후 20년 동안 몽골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게 된다.
자무카는 점점 포악해졌다. 테무친 부하들의 수급을 말 꼬리에 묶고 달리기도 했다. 이는 몽골에선 금기시 되는 행동이었다. 몽골인은 머리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상대의 머리를 훼손시키진 않았다.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보존해야만 했다.
여론은 점점 테무친의 편으로 돌아섰다. 초원의 부족들이 속속 테무친 진영에 합류했다. 평소 사이가 나빴던 부족도 있었다. 테무친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약탈한 물건을 공평하게 나눠준다고 하더라. 테무친이 타던 말을 받은 병사도 있다더라.”
몽골 고원에 바람처럼 빠르게 소문이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