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도주
한(漢) 고조 유방은 재미난 고사를 많이 남긴 인물이다. 부자지간에 얽힌 두 가지 얘기는 기막힐 정도다. 유방은 원래 시골 건달이었다. 진시황의 천하대업이 무너지면서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나자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천하대란의 결승전은 항우와 유방의 대결로 압축됐다. 항우는 결단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었다. 항우는 진과의 싸움에 임해 강을 건넌 후 타고 온 배를 가라앉혀 버렸다. 그리고는 밥 해먹을 솥마저 깨트렸다.
주변에선 깜짝 놀랐다. 먹을 것도 돌아갈 배도 없어졌으니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는 각오였다. 항우는 늘 이겼고, 유방은 그에게 쫓겨 다니는 고단한 신세였다.
한 번은 도망 다니던 유방이 자신의 수레에 탄 아들을 밖으로 내던졌다. 수레의 무게를 줄이면 그만큼 빨리 달아날 수 있어서다. 아들을 희생시켜 자신만 살아보겠다는 비정한 아버지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그랬다. 그때마다 수하들이 아들을 구해 수레 안으로 다시 들이밀었다.
항우는 자신의 아버지와도 기막힌 일화를 남겼다. 항우가 유방의 아버지를 인질로 붙잡고 그에게 항복을 요구했다. 항우는 “항복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를 삶아서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유방의 응답이 걸작이었다. 유방은 “기왕 우리 아버지를 삶거든 국 한 사발만은 내게도 나눠주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버지로도 아들로도 영 시원치 않았다. 하지만 천하를 얻었다.
테무친의 도주는 끝없이 계속됐다. 왕칸에게 테무친은 필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를 살려두면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이다. 풀을 없애려면 당연히 뿌리 채 뽑아 버려야 한다. 자연의 엄연한 생존 원리를 추격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추격은 집요했다.
테무친은 북으로, 북으로 달아났다. 기약 없는 도망자 신세였다. 십 여일이나 헤맸을까. 아득히 바이칼 호의 푸른 물결이 보였다. 지상에서 가장 많은 담수를 품은 거대한 호수다. 더 이상 달아날 곳은 없었다. 부대원들은 모두 흩어진 상태였다.
그의 곁에 남은 병력은 고작 19명. 이들을 데리고 무엇을 도모하겠나. 여기서 끝인가 싶었다. 모두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야생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오웬 라티모어가 말한 대로 딱 알맞은 시기에 등장한 상스러운 동물이었다.
위대한 텡그리(하늘)가 보내준 선물 아닐까. 테무친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 배부터 채워야 했다. 전사들은 땅에 피를 적시지 않은 채 말을 잡았다. 배가 부르자 비로소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에는 온통 흙탕물뿐이었다. 전사들은 일제히 몸을 숙여 그 물을 마셨다. 그런 다음 테무친은 일일이 부하들을 끌어안았다.
고난은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그것에 굴하면 독약이나 마찬가지다. 고난 앞에 무너지면 고난은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반면 고난을 극복하면 더 단단해진다. 고난은 테무친과 부하들은 더 굳게 결속시켰다.
테무친은 부하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줄 각오였다. 부하들은 그런 테무친에게 무한충성을 맹세했다. 흙탕물을 함께 마신 부하 가운데 누구도 테무친을 배반하지 않았다. 1203년 여름이었다. 역사가들은 이를 ‘발주나의 맹약’이라고 부른다.
발주나의 19인은 모두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고난을 함께 나눈 대가다. 그들에겐 사형을 9번 면죄 받을 권리와 전쟁 노획물의 우선권이 주어졌다. 테무친의 천막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특권도 허용됐다. 그 권리는 9대에 걸쳐 세습됐다.
테무친의 휘하에는 용장들이 많았다. 제베 노욘과 젤메는 물론 수보타이, 카사르, 무굴리 등 숱한 용사들이 그와 함께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들은 단순히 용맹함을 지닌 장수가 아니었다. 적진 깊숙이 고립되었을 때도 독자적 판단이 가능한 장수들이었다.
장수에 대한 테무친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는 용감한 장수보다 현명한 장수를 더 높이 샀다.
테무친은 “예수타이만큼 용감한 장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사령관이 될 수 없다. 그는 오랜 싸움에도 지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병사들의 체력이 자신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병사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수에게 사령관을 맡길 순 없다”고 말했다.
용감하지만 우둔한 장수에겐 후방의 보급품 관리를 맡겼다. 더 미련하면 아예 가축을 돌보게 했다. 용감하지만 조금 모자라는 측근 카사르에겐 칸의 상징인 칼을 받드는 자리를 주었다. 반면 성급한 공격을 참으면서 결정적인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수보타이는 사령관에 임명했다.
우둔하건 현명하건 그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테무친에 대한 무한 충성심이었다. 대부대를 이끌고 머나먼 미지의 땅으로 가 공을 세우고도 반드시 테무친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그곳에 남아 스스로 왕이 될 수도 있었다. 돌아온 그들의 수레엔 전리품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수보타이는 타타르와의 전쟁 때 거짓 항복 전술을 사용했다. 적을 방심하게 만든 다음 역습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항복을 하려다 마음을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에 수보타이는 “아름다운 여자와 멋진 말은 모두 칸의 것이다. 칸을 배반하면 사막을 헤매다가 죽어도 좋다”며 변함없는 충성을 과시했다.
한편 ‘발주나의 맹약’ 이후 정세는 급변했다.